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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작가 Jun 06. 2021

일상을 예술로 바꾸는 스마트폰
사진 디자인_2

사소한 일상을 작품으로 만들기

일상의 사소함을 작품으로 만들기



저번 글에 대해 회원님께서 제가 다시 생각하게 되는 소중한 의견을 주셨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사진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앵글, 구도, 심지어 촬영 방법까지 어느 하나 ‘이것이 맞는 것이다’ 하는 것은 없습니다. 각자의 다양한 방식으로 느낌을 표현하고 작품을 만드는 것이죠. 그런데도 제가 쓰는 글들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모든 사진과 글이 제 개인적인 시각이지만, 사소한 것들에서 디자인적 요소를 찾고 충분히 사진 소재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시각을 전환하고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충분히 많은 것들이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길냥이를 뒤로 하고 골목을 돌아 나와 다른 골목으로 재빠르게 들어갑니다. 좁고 기다란 골목이 보입니다. 그 자체로 괜찮은 곳이라 프레임만 결정하면 됩니다. 빛과 그림자와 뒷배경까지 고려해서 프레임을 결정합니다. 역동감을 주는 대각선이 교차하고 있어서 시선이 소실점으로 집중됩니다. 그림자가 적절한 비율을 차지하도록 프레임을 결정합니다. 



골목 끝에 다다를 즈음 요즘 핫플레이스인 통닭집이 보입니다. 다들 많이 찍는 공간이라 어떻게 촬영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프레임을 결정합니다. 귀를 기울여 자동차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몇 번의 시도를 거쳐 빨간색 자동차가 지나가는 순간을 잡아냅니다. 밋밋하던 사진에 작은 생기가 돕니다. 사진은 우연의 산물이라고 말들 하지만 사진은 절대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만들어지는 시간의 분할입니다.



골목을 나와 저번에 촬영했었던 장소들이 생각나서 비교도 할 겸 촬영하려고 합니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로 가는 교차로를 건너기 전 산부인과 건물로 갑니다. 병원 현관은 여전히 옅은 초록의 벽면과 늘어진 나무들이 반깁니다. 봄날의 나른함과 초록의 기운을 담아보려 고민하다가 촬영한 사진의 원본은 아래와 같습니다. 밋밋한 초록의 잔치를 없애려고 전경에 늘어진 나무에 포커스를 맞춥니다. 전체를 포기하고 부분을 잘라 인물사진 모드(갤럭시도 인물사진 모드)로 뒷 배경을 날립니다.  



신호등을 건너 배다리 헌책방 거리로 들어섭니다. 눈에 익은 풍경들을 지나쳐 도원역 방향으로 주욱 올라갑니다. 철길 옆 길거리에 조성된 갤러리에서는 미술작품이 전시 중입니다.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 곳에 설치된 갤러리가 스산함을 더합니다. 언덕이 거의 끝나갈 무렵 빌라를 배경으로 황토로 지어진 짙은 노란색 집이 보입니다. 뒷배경으로 보이는 빌라와 대조를 이루어진 분위기도 좋습니다. 파아란 하늘과 색조 대비를 했으면 좋겠지만 또 다른 건물이 겹쳐져서 아쉽습니다. 디자인적 요소를 생각해 창문을 가린 차양에 집중합니다.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를 뚫어서 개통하려다 주민들의 반대로 지지부진한 도로터에 만들어진 꽃밭이 보입니다. 오랜 시간을 서로 싸우다 보니 풀이 무성해지고 꽃들은 지천입니다. 인간들은 이익을 위해 싸우고 있는데 자연은 스스로를 회복하고 있습니다. 초록의 밭을 정원으로 한 언덕 위 집들이 보입니다. 앞의 나무를 전경으로 배치하고 가득 당겨서 촬영합니다. 초록의 땅과 푸른 하늘을 1:2의 비율로 나눕니다. 구름도 적당히 흘러 나른함을 더해 줍니다. 


 

몸을 돌려 천천히 도원역 방향으로 걷습니다. 걷다 보니 얼마 전에 제가 캘리그래피를 배웠던 공방이 나옵니다. 배운 지 얼마 안 됐지만 하루아침에 실력이 늘어 제 사진에 멋지게 글을 써보려는 망상을 갖습니다. 도원역이 있는 언덕 끝까지 오릅니다. 복권을 파는 작은 가게가 보이고 그 옆으로 우각로 골목길이 시작됩니다. 오래된 골목의 빈티지한 느낌을 주고자 대비와 채도를 약간 낮추고 분위기를 올려줍니다. 


 

그 길을 돌아 옆으로 가니 죽음도 이겨내는지 '불사 대신'의 무속인 집이 보이는 작은 담벼락이 있습니다. 언덕길에 지어진 집은 창문이 제 무릎에조차 이르지 못할 정도로 낮습니다. 비가 오면 빗방울이 튀어 방안을 적실 것 같습니다. 문을 열면 바로 길가로 이어지는 현관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이 집에 사는 이들은 아직 우각로를 떠나지 않고 살아내고 있습니다. 


 

우각로를 돌아볼까 생각하다가 오늘은 발길을 돌립니다. 빛이 머리 위로 올라오고 있어서 그림자의 느낌이 살아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서 입니다. 도원역 앞 신호등을 건너 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립니다. 멀리 우각로와 (구)전도관의 모습이 보입니다. 산 모양 그대로 이어진 집들이 아직도 사람들이 가득한 듯 보입니다. 잠시 기다렸다가 외로이 흘러가는 구름 하나를 잡아 봅니다. 위로 여백을 충분히 줘서 미니멀리즘 한 사진이 됐습니다.


 

몸을 틀어 뒤를 돌아보니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이 보입니다. 경기장 주변으로 구도심과 대조되는 높은 아파트들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저 아파트에 살면 경기는 공짜로 볼 수 있겠다 싶어 기분이 좋아집니다. 스마트폰의 초광각 렌즈와 망원렌즈를 이용해서 느낌을 살려봅니다. 표준으로 촬영해도 스마트폰 표준렌즈 자체가 광각렌즈이기 때문에 광각의 느낌이 납니다. 초광각의 느낌을 살리려고 바닥에 거의 앉아서 촬영을 합니다. 망원으로 촬영된 건물은 왜곡을 약간 잡아 동일한 높이에서 촬영한 것처럼 만들어 줍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소소한 것들은 항상 제게 디자인적 감각을 제공합니다. 사진구도와 디자인 요소들을 몸에 완전히 젖어들도록 해서 언제든지 빠른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다시 생각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촬영을 마무리합니다. 오랜만의 햇빛과 살랑거리는 바람이 기분을 좋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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