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질 들뢰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리좀'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하다가 '리좀적'이란 말의 의미를 이해하시기 어려워 하는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정리합니다.
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배웁니다. “먼저 주제를 정하세요. 주제에 맞는 피사체를 찾으세요. 그 피사체를 가장 잘 보여주는 프레임을 만드세요.” 주제에서 피사체로, 피사체에서 다시 프레임으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마치 위에서 아래로 뻗어 내려오는 나무와 비슷하죠.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이런 사고방식을 “수목형”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의 뿌리에서 줄기가 나오고, 그 줄기에서 가지가 뻗고, 잎이 달리는 구조죠. 중심, 기원, 위계가 명확합니다. 오랜 서양 철학의 전통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두 철학자는 『천 개의 고원』에서 전혀 다른 모델을 내놓습니다. 바로 ‘리좀’입니다.
리좀은 땅속줄기라는 뜻인데, 생강이나 감자, 잔디의 뿌리를 떠올려보면 됩니다. 중심이 따로 없고, 땅속에서 수평으로 자유롭게 뻗어갑니다. 어디에서 잘라도 다시 자라고, 어느 지점이든 다른 곳과 연결될 수 있죠.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 리좀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어느 점이든 다른 어떤 점과도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연결은 꼭 닮지 않아도 된다. 소리와 이미지, 개념과 감각, 예술과 정치 등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런 연결망은 어디서든 끊어질 수 있지만, 끊어진 곳에서 다시 이어질 수 있기도 합니다.
수목형 사고가 “이것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리좀적인 사고는 “이것은 무엇과 연결될 수 있을까?”를 묻는 셈입니다. 존재나 본질보다 생성과 관계에 더 관심을 두는 거죠.
그렇다면 사진에서 리좀의 방식은 어떻게 적용될까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죠.
촬영 단계에서 리좀은 계획을 무너뜨리는 시도입니다. 주제를 일부러 정하지 않고 시작해보세요. 눈에 들어오는 대로 사진을 찍고, 그 이미지가 다음 이미지를 이끌어내도록 두는 겁니다. A라는 이미지를 찍었는데, 전혀 무관해 보이는 B가 떠오르면 곧장 B도 찍어보세요. 인물, 풍경, 정물, 글자, 화면 등 대상을 구분하지 말고 섞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렇게 어울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이어질 때, 예상하지 못한 의미가 탄생합니다.
사진을 배열할 때 리좀은 익숙한 이야기를 해체합니다. 시작-전개-절정-결말처럼 한 방향으로 흐르는 사진들 대신, 어디에서 시작해도 전체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입구를 여러 개 만들어보세요. 시간 순서를 거부하고, 2023년 사진 옆에 2018년 사진을 놓을 수도 있습니다. 나의 사진 사이에 다른 사람 사진, 아카이브 이미지, 글귀를 섞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런 식으로 ‘순수성’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연결들이 열릴 수 있습니다.
전시 단계에서는 리좀이 고정된 방식을 흔들어놓습니다. 벽이 아니라 공간의 한가운데에 사진을 설치해두면, 관객들은 여러 방향에서 다가갈 수 있죠. 전시 기간 중 배치를 바꾸거나, 아예 관람객이 사진 카드를 직접 옮겨볼 수 있게 해보세요. 하나뿐인 ‘정답’ 같은 순서를 일부러 두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리좀적 접근은 아무렇게나 섞는 혼돈이 아닙니다. 리좀은 ‘예상 밖의 필연성’을 추구합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막상 연결해 놓으니 “아, 이게 되네” 하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래서 리좀적 작업에도 편집은 꼭 필요합니다. 연결의 힘을 가늠해보고, 약한 고리는 과감하게 잘라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열어두면 관객이 쉽게 길을 잃을 수 있으니까요. 들뢰즈도 “지도와 복사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정 부분은 길을 잡아주면서, 그 틀에서 벗어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실제적인 접근인 셈입니다.
결국 리좀적 사진은 ‘무엇에 대한’ 사진이 아니라 ‘사이에 놓인’ 사진입니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 작가와 관객 사이, 의도와 우연 사이, 바로 그 틈에서 의미가 고정되지 않고 끝없이 새롭게 만들어집니다.
들뢰즈의 말을 빌려 보면 이런 뜻입니다. “중요한 건 시작도 끝도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그 중간이다.”
우리는 사진을 찍으면서 항상 결론을 향해 달려가곤 합니다. 완전히 갖춰진 시리즈, 또렷한 메시지, 깔끔하게 정리된 포트폴리오 같은 결과를 생각하죠. 그런데 리좀적인 사고방식은 이렇게 묻는 것 같습니다.
'꼭 결론에 도달해야만 할까? 그냥 계속 자라나고 변화해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