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책 추천_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

by 채 수창

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은 사진가(예술가)에게 단순히 '기술적 기록자'를 넘어 '세계와 소통하는 몸'으로서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철학적 지침서입니다. 특히 기술 숙련보다 개념적 사고력과 사진 미학을 중시하는 사진가에게 이 책이 필요합니다.


메를로 퐁티는 지각이 지적인 판단이 아니라 '신체적 경험'이라고 주장합니다. 장님이 지팡이를 통해 세계를 느끼듯, 사진가에게 카메라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신체의 확장된 감각 기관이 됩니다. 뷰파인더를 보는 행위는 대상을 관찰하는 것을 넘어, 작가의 '살(Chair)'이 세계와 맞닿는 현상학적 사건이 됩니다.


그는 우리가 언어나 지식으로 세상을 판단하기 전의 '전-반성적(Pre-reflective)' 지각을 강조합니다. 사진가는 사물에 붙여진 이름(라벨)을 제거하고, 그 사물이 세계 속에서 드러내는 원초적인 존재감을 포착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이전 글에서 다뤘던 '낯설게 하기'의 철학적 근거가 되며, 익숙한 풍경을 낯선 조형적 기호로 재발견하게 돕습니다.


전통적인 사진이 '보는 나'와 '찍히는 대상'을 분리했다면, 퐁티는 이 둘이 서로 얽혀 있는 '교차(Chiasm)' 관계임을 말합니다. 사진가는 세계를 일방적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일부로서 그 풍경 속에 함께 존재함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인식은 사진에 작가의 실존적 고찰을 담게 하며, 결과물에 단순한 재현 이상의 현상학적 깊이를 부여합니다.


기술적인 보정이나 구도 설정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어떻게 지각하는가?'입니다. 퐁티의 이론은 사진가로 하여금 "무엇을 찍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나는 이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으로 확장하게 합니다.


"지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과 함께 세계를 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따끈한 신간이 나왔네요(저는 이 저자나 출판사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동안 후설의 현상학에 이어, 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에 대한 국내 도서가 여러 번 나왔지만, 프랑스어의 특유한 언어적 특성이나 감각 등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아쉬웠는데 이번에 괜찮은 책이 나왔습니다.


이번 저자는 메를로 퐁티로 국내 석사, 프랑스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책 페이지 수가 '852 페이지'로 그 양이 방대해서 쉽게 손에 잡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강력 추천합니다. 시간되시면 천천히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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