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를 만드는가?

by 채 수창

사진 전시 오프닝에 가면 간혹 흥미로운 장면을 보게 됩니다. 작가들은 정작 벽에 걸린 작품보다, 먼저 누가 왔는지부터 두리번거립니다. 시선도 프린트보다 먼저 명함을 주고받는 손놀림에 머뭅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단순한 허영에서 비롯된 게 아닙니다. 누구에게 인정을 받았는지, 또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일종의 ‘인정 네트워크’를 점검하려는 본능에 가깝죠.


사진을 막 시작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도 카메라를 사는 게 아니라 동호회를 찾아보는 일입니다. 사진학회에 가입한다거나, 클래스에 등록하고, 공모전에 도전하는 건 단순히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나는 진지한 사진가다"라는 정체성을 바깥에 알리려는 무언의 다짐이죠. 렌즈 브랜드별 커뮤니티나 스트리트, 풍경, 인물 촬영 같은 특정 장르 모임들은 취향을 공유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와 그들” 사이의 경계가 생기고, 그 안에서 소속감을 확인하며 자기 정체성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 걸까요? 호모 사피엔스는 약 30만 년 동안 150명 남짓의 작은 부족 단위로 살아왔습니다. 집단에서 밀려난 개체는 포식자 공격을 당하거나, 먹을거리가 부족해지거나, 번식 기회를 잃으면서 거의 살아남기 힘들었죠. 이런 생존 압력이 우리의 뇌에 소속을 감지하는 회로를 남겼습니다. 현대인이 느끼는 “나만 빠진 것 같은 불안”도 사실 알고 보면, “무리에서 이탈했다”는 경보의 흔적입니다. 신경과학 연구를 보면, 사회적으로 배제당할 때 뇌에서는 신체적 통증과 비슷한 부분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결국 소속은, 심리적 취향이나 선택 이전에 몸 깊숙이 각인된 생존 본능인 셈이죠.


사회심리학자 찰스 쿨리는 이것을 '거울 자아'라는 개념으로 풀어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스스로를 바라보고, 거기에 맞춰 자신의 모습을 만듭니다. “나는 사진가다”라는 정체성 역시, 회원증이나 전시 이력, 동료의 인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남 앞에서 힘을 얻습니다. 소속감이 없는 정체성은 혼자만의 외침에 그치면서 마음속 허전함을 남깁니다.


철학자 악셀 호네트에 따르면, 인간 갈등의 뿌리는 바로 ‘인정 투쟁’에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존재’임을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집단은 각자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종의 화폐 시스템과도 같습니다. 공모전 수상은 심사위원의 인정이고, 전시회 오프닝에서의 박수는 관객의 인정이며, 온라인 커뮤니티의 ‘좋아요’는 익명의 대중이 보내는 인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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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회에서는 소속이 태어나는 순간 주어졌습니다. 반면 현대인은 그런 자동적인 소속을 잃는 대신, 다양한 집단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선택지가 많아진 만큼 오히려 새로운 방식의 불안이 뒤따릅니다. SNS가 이 모순을 극대화합니다. 인스타그램 사진계정만 만들어도 작가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기분을 주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이미지 파편들 속에서 오히려 더 고립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사실 소속 욕구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소속이 목적이 되어버리거나, 인정받는 수치에 집착해 스스로의 내적 기준을 잃을 때 진짜 문제가 시작됩니다.


내가 속한 집단이 “나를 증명하는 도구”인지, 아니면 “나를 확장시키는 관계”인지, 이따금 자신에게 물어보는 일이 결국 이것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질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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