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위로 기울어진 시간

by 채 수창

오후 세 시쯤이었습니다. 창밖 어딘가에 있는 사물의 그림자가 벽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고, 그 아래에 놓인 의자 시트가 햇살을 잘게 나눠 받아내고 있었죠. 의자 시트에는 삼각형 모양의 빛 한 조각이 비스듬히 내려앉았습니다. 이 의자는 누군가 앉으라고 놓인 자리가 아니라, 잠시 빛이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준비된 자리 같았습니다.


빛은 언제나 움직임을 멈추지 않습니다. 지금 이 각도는 5분 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내일 같은 시간에도 구름의 두께나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카페에 놓인 의자는 원래의 쓰임을 잠시 잊고, 빛을 위한 무대가 되었습니다. 일상 속 사물이 자기 기능을 내려놓고 순수한 조형 요소로 환원되는 순간, 우리는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 낯선 감각이 바로 ‘낯설게 하기’의 미학입니다. 빛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이게 만드는, 가장 오랜 도구죠.


빛이 점점 기울어가는 시간, 의자는 아무도 앉지 않은 채로 고요히 빛을 받아들입니다. 이 풍경은 기다림을 닮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올 수도 있고, 끝내 오지 않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모든 가능성보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 빛이 있었고 그 순간을 기록했다는 사실입니다. 사진이란, 없는 것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존재를 남기는 일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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