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어둠 속에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면, 그저 없다고 생각해 버리곤 한다.
밤바다에서는 이런 착각이 더욱 쉽게 일어난다. 수평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파도 소리만 잔잔히 울린다. 물과 하늘의 경계도 어느덧 흐릿해진다. 시야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낮에 분명히 그 자리에 있던 섬이 밤이 되었다고 해서 물속으로 사라지는 건 아니다. 바위 역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위로는 여전히 흰 파도가 부서진다. 사실 ‘보이지 않는다’와 ‘없다’라는 전혀 다른 말인데도, 어둠은 자꾸 이 둘을 헷갈리게 만든다.
카메라를 오래 다룬 사람에게 이런 감각은 그리 낯설지 않다. 사진을 연달아 찍고 쌓을 때가 있지만, 아무것도 찍을 수 없는 때도 찾아온다. 셔터를 아무리 눌러도 결과물이 어딘가 낯설고, 사진이 오히려 나를 외면하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뷰파인더에는 무언가 들어오지만, 그게 도무지 사진이 될 생각을 하지 않는 시간, 이런 답답한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행동을 한다. 억지로라도 셔터를 계속 누르거나, 아니면 카메라를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버린다. 둘 다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이런 시기를 결핍으로 생각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화면을 켜 사진 폴더를 열었다가, 다시 닫는다. 또다시 연다. 무엇을 고르지 못하는 게 아니라, 내가 뭘 보고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다는 느낌, 렌즈를 어디로 돌릴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정작 지금 내가 무엇을 보고 싶은지부터가 흐릿해진다. 아마 당신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카메라는 손에 있는데, 찍고 싶은 이유는 떠오르지 않는 날. ‘찍어야 한다’라는 생각만 남고, 왜 찍는지 대답하긴 어려운 날. 이런 상태가 하루이틀 정도면 피곤해서 그렇다고 넘길 수 있다. 그런데 한 달쯤 계속되면, 슬며시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인지,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혹시 처음부터 내가 제대로 본 것이 없었던 건 아닌지 고민한다.
이런 의심이 특히 무서운 이유는, 지금 그 의심이 틀렸다고 증명할 수 있는 사진이 내 손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결핍이 아닐 수도 있다. 카메라를 들지 않아도 사진가의 눈은 계속 작동한다. 의식하지 않을 때도 늘 무언가를 바라보고, 그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보는 방식이 변해 있기도 하다. 오히려 사진을 찍지 않는 시간들이 내 안에서 새로운 시선과 감각으로 쌓여가는지 모른다. 이 쌓임은 바로 사진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우리가 알아차리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 사라진 게 아니다. 침묵하는 섬처럼, 그 시간도 조용히 내 곁에 머물고 있다.
글을 쓸 때도, 어떤 사진을 마주하면 말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히 뭔가가 그 안에 있는데,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답답함이다. 예전에는 그걸 나 스스로가 부족한 사람이라서 그런가 싶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다.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는 건, 오히려 그 사진 안에 뭔가가 더 있다는 신호 같다. 아직 언어가 미처 거기까지 닿지 않았을 뿐이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게 사라진 건 아니다.
작업이 멈춘 듯 느껴질 때면, 나는 먼저 내가 지금 어디를 향해 보고 있는지 가만히 떠올려본다. 혹시 밤바다를 바라보면서 섬이 없다고 단정해 버리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 빛이 사라져도 섬은 여전히 파도를 맞고 있다. 그 파도 소리가 은은하게 이어지는 동안, 섬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