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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왕자 aka C FLOW Jan 11. 2018

몸의 언어

낯설음에 익숙해 지기

실천적 지혜

1996년, 기숙사와 교육시설이 함께 있는 특수학교에 입학했다.


부모와 처음으로 떨어져야 했던 두려움, 신입생이기에 낯설음, 무엇보다 나와 다른 장애를 갖고 있는 학생들과 섞여 생활해야할 기숙사가 그랬다.


내가 배정받은 방은 선배와 신입생 6명이 함께 지냈다. 이들 중 손과 눈으로만 대화하는 학생이 눈에 띄었다. 나와 같은 신입생. 뒤틀린 몸, 말은 전혀 할 수 없었다.


오른손을 한번 쥐었다 펴면 "Yes", 두번 쥐었다 펴면 "No"였다. "Yes"에는 강한 긍정과 가벼운 긍정도 있었고, 마지못해 하는 긍정도 있었다. "No"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친구의 표정과 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점호시간 청소당번을 정해야 했을 때의 일이다. 선배들은 서열로 순번을 정하기 원했고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애써 순응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심하게 경직되며 소리를 질렀다. 순간 우리는 그 반응이 "No"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 이유를 듣고자 했던 선배들은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좀 더 원할한 대화를 위한 다양한 질문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너가 바닥을 청소할래? 내가 책상 닦을께"

-"No"(손바닥)

"너가 어제 여기 했으니까 번갈아서 하자고"

-"No"(손바닥)

"왜 싫은데, 오늘도 허리가 아파?"

-"No"(무릎을 가리키며)

"다리가 아프다고?"

-"Yes"(손바닥 2번)


수 많은 질문을 제시하다 보니 "Yes"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친구의 정보를 많이 얻을 수록 더 다양한 질문을 제시할 수 있었고 "Yes", "No" 만으로도 거의 모든 대화가 가능해질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을 "실천적 지혜"라 정의하고 싶다.


Live life like you mean it
영화:인사이드 아임 댄싱(출처:네이버 영화 갈무리)

2년전 장애와 관련된 자료를 찾다 발견한 영화 인사이드 아임 댄싱(원제목 : Rory O'Shea Was Here)은 나의 그 시절 경험과 유사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알아듣기 어려운 언어장애와 신체장애를 모두 갖고 있는 '마이클(스티븐 로버트슨)'과 진행성 근육마비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로리(제임스 맥어보이)' 이 둘의 만남을 통해 탈시설, 자립의 과정을 거칠지 않게 보여주었던 영화로 기억한다.


대화는 '뇌에서 전달 받은 자극으로 움직이는 혀와 입모양의 소리'로만 가능한 것은 분명 아니다.


앞서 정의한 '실천적 지혜'는 이러한 방법의 정형화된 기준을 유연하게 바라보고 접근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힘을 알게된 순간 부터 익숙함의 경계를 허물고, 낮설음에 익숙해지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거기서 부터 '장애'가 아닌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름 최충일.

집에서는 "아빠, 남편, 아들"이고
직장에서는 사회복지사 또는 "최 선생님",
무대위에선 "엄지왕자",
친구들은 "쪼까니"(키가 작아서)라 부른다.

그리고 지체2급 장애인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다양한
호칭과 별명을 갖는다.

그러나 "장애인"은 내게
호칭도 별명도 될수 없는 단어다.

어릴때 동네 꼬마들이 놀릴때 빼고는...
평소 사람들이 "장애인 안녕?"
이라고 한적은 없었다.

"장애인"이란 단어는 나의 삶가운데
지극히 한정된 상황에서만 불려지는
어색한 "middle name"이다.

중고등학교를 특수학교에서 졸업,
대학생활 힙합에 빠졌고 지금도 사랑한다.
직장이 있고 결혼하여 아빠가 되었다.
삶의 행복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싶다.

장애인이 아닌 아빠,남편,래퍼,직장인,아들로써...
삶의 다양성과 일상을 타이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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