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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왕자 aka C FLOW May 01. 2018

장애, 그 지겹고 지루한 소재

누군가의 엉덩이이 맞닿은 나

솔직히 나도 장애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지겨운 측면이 있다.

나에 대하여 서술해야 하는 일은 때로 흥미롭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지루한 일이다.

그럼에도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같은, 이른바 ‘소수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말하기를 언제나 요구받는다. 누군가가 요구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도 장애라는 렌즈를 거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나는 거의 모든 문제를 ‘장애’라는 경험을 투사하여 바라본다.

북핵문제에 대하여 한반도 정세에 내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하철을 탄다면, 나는 금세 만원 지하철 바로 앞에 놓인 키 큰 남자의 엉덩이를 마주하게 된다.

타인의 엉덩이에 코를 박은 상태에서 북한이 뭘 어쨌는지는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일단은 내가 왜 엉덩이에 가까운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며 그렇게 된 데에는 저 엉덩이 주인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주는 무력감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면 도대체 국가 재정은 왜 전동차 휠체어 전용석을 하나쯤 늘려 나를 엉덩이로부터 떨어뜨려 놓지 않고 방산비리 쓰여야 하는지 정도의 부당함을 느끼는 것으로 생각을 마무리해버린다.

나의 모든 분야에 대한 관심은 지독할 정도로 장애라는 렌즈를 통과하고 내가 관심을 두는 어떠한 ‘문제’들은 모두 ‘다른 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나의 문제’로 바껴버린다.

그것이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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