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해 일하세요
출근 길에 이웃 주민을 만났다.
평소 두터운 관계는 아니지만 초면도 아닌, 그러나 인사를 나누는 평범한 '이웃주민' 이다. 아침마다 비슷한 시간대에 마주칠 때가 종종 있다. 오늘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게 말 걸었다.
"그래도 꾸준히 활동하네요."
이 말을 듣고 좋아해야 할지 기분 나빠해야 할지, 살짝 혼란스러웠다. 좋게 생각하면 '장애가 있음에도 열심히 사시네요.'와 같은 칭찬과 격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 같은 중증장애인은 제대로 사회 활동할 수 없다'라는 생각이 깔린 말로 들렸다. 좀 더 과하게 말하면 '너 같은 중증장애인이 소소하게 취미생활이나 하지' 와 같은 비꼬는 말로 받아 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선의로 표현한 말일 지라도 말이다. 이것이 피해의식일까, 모르겠다.
만약 그 이웃분과 내가 입사 면접을 위한 자리에서 만났다면 "장애인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와 같은 말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공격본능, 지배본능, 소유욕, 열등감.. 프로이드는 무의식에 대한 이면에 대해 이론화했다. 잠재된 무의식에서 갇혀진 속성들이 특정 상황이나 관계에 따라 표출될 때 사회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정의하며 본능으로써 사라질 수 없는 속성으로 정의한다. 프로이드는 이에 대한 '감소' '최소화' 를 위한 방법을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조금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장애인식개선교육이라는 것이 단순히 교육적 차원 만으로 접근하는 데 있어 한계가 있다고 본다.
문화적 공감, 참여를 위한 실천방법을 어떡해 하면 공론화 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 민간기업에서도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법정의무교육으로 법제화될 예정으로 장애계 '뜨거운 감자'다. 한편으로는 공공영역에서 개입하는 순간 자칫 형식적인 의무성만 주어질까 우려된다. 나는 이 우려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싶다.
비주류, 약자, 소수자의 문화와
주류, 대중적 문화의 틀을 허물기 위한 탐구..
공자는 용서하다의 '서'를 강조한다. '서'는 같을 '여' 와 마음 '심' 이 합쳐진 한자어다. 남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것이 '서'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아침에 만난 이웃주민의 짧은, 무의식에 묻어난 그 인사말을 지울 수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