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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왕자 aka C FLOW Oct 05. 2018

세탁기 사건

삶과 죽음 사이의 소재는 다양하다

<세탁기 사건>

2010년 여름이었다. 당시 혼자 살던 나는 세탁실에 통돌이형 세탁기를 사용했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지 않으면 세탁기 속 빨래를 제대로 넣거나 빼기 어려웠기에 일주일에 한번 혹은 3일에 한번 꼴로 해야만 하는 빨래가 큰 과제였다.

월요일 아침, 출근 전 건조된 옷이 구겨지기 전에 건조대에 널고 가려고 했다. 그 날도 평소와 같이 의자를 밟고 세탁기에 손을 뻗었는데 기울어진 허리와 머리가 아래로 향하던 찰나 세탁기에 몸이 들어갔다.

짧았던 10초 남짓, 혼자 움직일 수록 뭔가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다. 벽시계 소리가 귀에 울려 퍼져 1초가 몇만분의 1로 쪼개진 느낌을 받았었다. 누군가 오길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내 힘으로 빠져나갈 것인가. 침착하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방법을 찾으려 했다.

식탁에 올려논 핸드폰에서는 쉴새없이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아마도 출근 시간 9시를 훌쩍 넘어서 걸려오는 팀장님일 것이라 짐작했다.

구겨진 어깨와 목, 꺽인 손가락 사이 틈을 이용해  바닥을 향한 머리를 조금씩 방향을 틀어 몸을 한바퀴 돌려보기로 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손과 머리를 이용해 머리가 세탁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팀장님께 집열쇠를 한개 더 드렸다. 혹시 모를 또 다른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란 예감에서였다.

몇년 후 인터넷 신문에 나와 비슷한 사건으로 사망한 한 장애인의 죽음을 다룬 보도자료를 보게 되었다. 어쩌면 그 기사의 주인공이 나였을 수도 있었던 일명 <세탁기 사건>

오늘 간만에 비마이너를 보다 또 다시 마주한 활동보조 지원제도와 관련되 기사를 또 보게되었다.

나, 혹은 누군가에게 생존이 연결된 이 제도. 24시간이 필요하다면 24시간이 제공되어야 한다. 내가 겪은 세탁기 사건과 같이 새삼스럽게 이슈화된 기사로 치부되며 묻혀지는 것이 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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