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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왕자 aka C FLOW Jan 07. 2020

예측 불가능성

피하는 사람들

1996년부터 특수학교를 다니던 6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친구들의 불규칙한 몸짓과 발음이었다.


한 마디 할 때마다 온 몸에 힘을 주며 말하다 보니 대화에서 주는 감정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친구들이 말을 걸면 항상 긴장하고 주의 깊게 들었다. 잠시라도 단어를 놓치면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것을 다시 물어보는 상황이 반복되니 나도 모르게 몰라도 이해한 척 넘어가기 일수였다.


6개월 정도 함께하면서 듣기가 열리기 시작했다. 입모양과 몸짓이 열리는 동시에 어떤 질문을 할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는 친구들은 경직된 근육으로 인해 마주 보고 대화할 때마다 얼굴에 침이 많이 날아온다. 친한 사이일수록 그런 나의 불편함을 자주 표현하곤 했는데 한 친구는 내게 "나랑 대화할 때는 손으로 막으면서 말해도 돼"라고 하면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어울리던 기억이 있다.


물론 처음 본 사람에게 그 친구한테 했던 것처럼 행동한다면 굉장히 무례하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어린 시절은 서로에게 불편함보다 유쾌함과 추억으로 채워져 있다.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혀끝에서 나오는 언어로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장애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표정, 미간, 발음 등 전체적인 몸짓을 함께 읽지 않으면 대화를 이어가기 어렵다.


드라마에서 나의 기억들이 연출되었으면 한다. 시청자의 불편함을 보이는 것이 아닌, 의사소통의 다양성, 예측 불가능한 몸짓에서 오는 감정들을 시청자들도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로 익숙해졌으면 한다. 장애인이 나오는 드라마는 그것이 없다. 예측 가능한 몸짓과 비장애인과 소통이 가능한 모습들만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오아시스'가 뇌병변 여성 장애인의 불편함, 현실과 환상을 오고 간 사랑이라면 드라마는 일상에서 만나는 장애인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2016년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배우 조인성처럼 매력적인 외모와 안정적인 신체, 대화 가능한 호감형의 장애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호감 장애인도 없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예측 불가능한 몸짓의 언어를 보여주는 장애인들은 다큐멘터리나 비상업적 영화에서나 볼 수 있으면 안 된다. 그들의 몸짓과 언어는 전혀 예술적이거나 심오하지 않다. 일상의 감정을 표현하는 우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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