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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왕자 aka C FLOW Apr 22. 2016

교회와 장애인

빈곤과 장애의 투영적 관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많은 교회가 이 날을

장애인 주간으로 정

바자회도 하고 내게 쌀도 주고

떡도 주고 라면 한 박스 다.


빈곤과 장애를 동일시 하거나

배려와 권리를 동일시 한다면


마치 장애인의 날 만큼은

조금은 배불리 먹고,

성도들의 따뜻한 미소와 관심,

사랑을 느낄 수 있기에 행복하다는

장애인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이 날은

빼빼로데이, 발렌타인데이 같은

기념일 같은 기분이 든다.


교회가 성경 속 하나님의 참뜻을 헤아리고

올바른 장애인관으로 접근하고 있는가


현재 한국 교회의 모습 속에서 장애인은

분리 배제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장애인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에도

비장애인과 분리된 형태의

예배를 드리고 있거나 복음전파의

후순위로 여겨진다.


많은 교회이 위기 때마다

혹은 비난의 대상이 될 때 마다

장애인 동등한 성도로 보지 않

사회복지 실천을 위한

영성적 대상으로

교회의 운영, 유지, 확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을 강조하는 교회에서

봉사와 섬김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여겨지는

장애인은 교회의 양적 성장에 기여하지 못할뿐더러

교회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상으

인식되었을 수도 있다.


서로 사랑하라

교회 속 장애인은 보호와 사랑의 대상일 뿐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사랑부가 있는 교회들마저도

장애인 성도와 비장애인 성도의 관계는

“서로 사랑하자”는 대등한 관계가 

보호와 돌봄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


통합예배, 통합교회로의 변화는

장애인 선교에 대한 신학적 근거에서나

장애학적 근거에서나 실천적 근거를 통해

볼 때도 당연한 변화가 되야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각기 다른 우리의 모습속에도

자신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갖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한

자녀가 되길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


나를 사랑하라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임을 사랑하라"고 했다.


그 갈등과 폭동속에도 사랑을 말하고

검은색의 가치를 말한 그 시대와


나의 장애를 사랑하라고 말하기 까지

겪었던 차별과 장애 속에서

가치를 찾던 모습이 다르지 않다.


삶을 공유하는 방법은 "소통"이 있는 진솔함이다.

삶의 가치와 스토리를 온몸으로 펼치자!


세상이 우리를 끌어안을 수 있게

더 뜨겁게 펼치자!


이름 최충일.

집에서는 "아빠, 남편, 아들"이고
직장에서는 "선생님",
무대위에선 "엄지왕자",
친구들은 "쪼까니"(키가 작아서)라 부른다.

그리고 지체2급 장애인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다양한
호칭과 별명을 갖는다.

그러나 "장애인"은 내게
호칭도 별명도 될수 없는 단어다.

어릴때 동네 꼬마들이 놀릴때 빼고는...
평소 사람들이 "장애인 안녕?"
이라고 한적은 없었다.

"장애인"이란 단어는 나의 삶가운데
지극히 한정된 상황에서만 불려지는
어색한 "middle name"이다.

중고등학교를 특수학교에서 졸업,
대학생활 힙합에 빠졌고 지금도 사랑한다.
직장이 있고 결혼하여 아빠가 되었다.

삶의 행복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싶다.

장애인이 아닌 아빠,남편,래퍼,직장인,아들로써...
삶의 다양성과 일상을 타이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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