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지왕자 aka C FLOW Feb 02. 2017

생산성 없는 삶은 가치가 없는 삶인가

광화문 시위현장 속 일그러진 사람들

생산성 없는 삶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내가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던 2002년. 부산의 지하철 역에서 신변을 비관하여 자살한 시각장애인 유서의 일부다. 그 이후에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장애인이 취업이 안 되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들었다.


누구인들 생산성과 삶의 가치를 직결시키는 명제로부터 자유로울수 있는가, 장애인들에게는 이처럼 삶의 가치가 평가절하당하는 일이 빈번하며 장애를 가지고 사회에 통합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것이 현실이다.

지난 광화문에서 있었던 '장애인 시설 수용 정책 폐기 집회' 시위현장.. 나도 그 곳에 있었다.


시설이 필요한 시기가 분명있었고, 지금도 그 당위성은 일선 실무자 부터 정치인들에게 까지 존재한다.


티비에서 나오는 외진곳 하얀색 건물, 환자복 입은 곳은 '시설'이 아닌 '수용소'였다.


영화 빠삐용이나 쇼생크 탈출이 나오는 곳이 극소수 존재하지만 '정신장애인'이 생활하는 시설들은 생각외로 대부분 지역사회에 밀착되어 있다.


슈퍼 옆 상가건물 등 의외에 '개방'된 곳에서 운영되는 이러한 시설들은 분명 그 안은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모습들로 존재할 것이다.


광화문에서 시위하는 장애인 단체 혹은 개인의 경우에도 이러한 시설을 체험해 봤거나 혹은 적어도 비슷한 곳에서의 단기적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80~90년대 부족하지만 교육의 기회를 잡은 사람들 혹은 장애인 특례입학제도의 시작은 그렇게 탈시설하여 지금의 장애인들이 사회로 진출하기 시작한 하나의 '계기'였을 수도 있다.


광화문에 나온 4~50대 단체장 부터 다양한 직업과 지위를 갖고 있는 장애인 활동가들은 바로 그 '기회'를 잡은 '1세대' 들이며 나 또한 어쩌면 그 1세대에 속할런지 모른다.


복지란 그런 것이다. '혜택'을 퍼주는 것이 아닌 '기회'와 '가능성'을 공급할 때 우리의 '가치'를 인정받는 삶을 느끼게 되는 순간 순간들이다.


'생산성'의 유무는 그 이후의 문제다. 한 개인의 삶을 다른 개인이나 법인이 함부로 '생산성'을 논해선 안된다. 절대로,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며 '생존'을 위한 필수가 아니라고 믿는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취업이 안되 자살한 한 장애인.. 아니 한 청년과 동시대를 살았던 나의 모습은 바로 그 차이였다. 난 살아있고 난 누군가가 말한 생산성을 넘어 가능성을 깨닫고 성장하고 있다. 오늘도!


이름 최충일.

집에서는 "아빠, 남편, 아들"이고
직장에서는 "선생님",
무대위에선 "엄지왕자",
친구들은 "쪼까니"(키가 작아서)라 부른다.

그리고 지체2급 장애인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다양한
호칭과 별명을 갖는다.

그러나 "장애인"은 내게
호칭도 별명도 될수 없는 단어다.

어릴때 동네 꼬마들이 놀릴때 빼고는...
평소 사람들이 "장애인 안녕?"
이라고 한적은 없었다.

"장애인"이란 단어는 나의 삶가운데
지극히 한정된 상황에서만 불려지는
어색한 "middle name"이다.

중고등학교를 특수학교에서 졸업,
대학생활 힙합에 빠졌고 지금도 사랑한다.
직장이 있고 결혼하여 아빠가 되었다.

삶의 행복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싶다.

장애인이 아닌 아빠,남편,래퍼,직장인,아들로써...
삶의 다양성과 일상을 타이핑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교회와 장애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