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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May 08. 2022

죄송해요 선생님

 평소 늘 존경하는 국어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 선생, 여기 학생 하나를 맡아줘야 겠어. 성적이 별로 안 좋아. 미안 하지만 신 선생이 맡아주면 고맙겠네”


 그렇게 그 아이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성적을 보니 형편없었다. 지금까지 끊임없이 과외를 했단다. 도대체 그동안 뭘 어떻게 했던 걸까?

선생님의 부탁으로 맡긴 했지만 암담했다. 고3이었다. 늘 그러하듯이 기초부터 닦았다. 대수학분야와 기하의 기본을 가르쳤다. 그런데 의외로 받아들이는 게 빨랐다. 나는 어중간히 어디에선가 듣고 안다는 듯한 아이들보다 이처럼 흰 도화지 같은 아이를 가르치기를 좋아한다. 나만의 수학을 흡수해 주기 때문이다. 기초를 닦는데 열심히 따랐다. 녀석이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선생님 죄송해요”

“뭐가?”

“제가 너무 못해서요”

“그게 뭐가 죄송해. 열심히 해주니 고맙다. 더 열심히 하자”

“네 선생님”


 가끔씩 수업 중에 안절부절 못하는 게 보였다. 나는 수업을 시작하면 두 시간을 꼼짝없이 한다. 그런데 1시간쯤 지날 때면 안절부절 이었다. 그럴 때면 잠시 쉬었다. 어느 날 내가 물었다.


“홍아, 너 담배 피우나?”

“안 피우는데요”

“아니 샘이 야단치려고 하는 게 아니니 솔직히 말해봐라. 너 담배하지?”

“네…….”


녀석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나가서 한 대 피우고 와라”

“에? 그래도 되요?”

“어 그래. 나가서 피우고 와라”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내가 고개를 그떡여 나갔다 오라고 했더니 나간다. 담배를 피우고 온 그에게 내가 말했다.


“홍아, 담배를 피우는 건 좋은데 조금씩 줄여봐라.”

“네…….”

“샘하고 약속하는 거다. 당분간은 하루 5개비로 줄여 봐라”


녀석은 그 약속도 지켜나갔다. 고마웠다.

 공부에 있었어도 녀석의 받아들이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두 개를 깨우쳤다. 신기한 놈이었다.


“홍아, 내가 보면 넌 천재적 기질이 있어”

“제가 무슨 천재에요? 저 같은 놈이…….”


 녀석이 내게 왔을 때 이런 얘길 했었다. 고3인 지금까지 수학점수가 60을 넘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단다. 그래서 1차 목표를 60점을 넘기는 것으로 잡았었다. 그때 이 녀석과 같은 시기에 한 녀석이 더 왔었는데 그녀석도 그랬다. 그런데 6월 모의고사에서 두 녀석 모두 60점을 넘겼다. 60점과 61점이었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최고의 수학점수를 받은 것이다.

어머니하고 늘 상담을 하는데 아버지가 재수는 절대 안 된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냥 아무데나 4년제 대학만 들어가면 된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불신은 상당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아버지와 직접적인 상담을 할 수는 없었다.

여름방학 때는 나는 아이들을 하드트레이닝을 시킨다. 아이들이 방학이 다가오면 죽었다는 얘기를 한다. 그렇다고 여태껏 그 과정을 못해낸 아이들은 없다. 그 과정을 마치면 아이들은 한 결 같이 말했다. 방학 1달 동안 공부한 게 1년 치 분량이라고 엄살을 떨었다. 그만큼 열심히 한다. 나는 학년을 무시한다. 선행학습으로 고1 공부를 하는 중2 아이에게 고1 형의 문제 푸는 걸 도와주라고 한다.


“정우야, 이 형한테 이 문제 설명해 줘라”


그러면 그 아이가 고1, 고2 형 누나에게 문제를 설명한다.

어느 날 온지 두 달쯤 된 여자아이가 말했다.


“샘, 쟤 있자나요. 내가 앞에 수업 받았던 학원 샘보다 더 잘 가르쳐요”


그 아이는 같은 학년의 남자 아이에게 전담을 맡겨 놓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 한 아이를 불러내어 풀면서 설명하라고 한다. 그러면 나머지 아이들이 들으면서 의문점을 질문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내가 옆에서 툭툭 던지는 질문에도 모두가 답해야 한다. 외워서 푸는 아이들에게 왜 거기서 그렇게 접근하는가를 집요하게 묻는다. 답을 못하면 아웃이다. 문제의 어떤 문구 때문에 그렇게 접근하는지를 확실히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9월 모의고사가 다가왔다. 몇 년간의 9월 모의고사를 가지고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녀석은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다.

모의고사 성적이 나왔다. 78점을 받았다.

내가 다시 말했다. 아버지에게 무릎 꿇고 한번만 밀어 달라고 진지하게 말씀드리라고 했다.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샘, 아버지가 재수하고 싶으면 하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왔어도 녀석은 눈물을 글썽였다. 정말 처음으로 아버지에게서 인정을 받은 것이었다. 엄마가 늘 안쓰러워했다. 아버지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늘 기가 죽어지내는 아이였단다. 녀석은 말이 약간 어눌하다. 혀가 짧은 듯한 말투에 느릿느릿하게 말을 하니 성질이 급한 사람은 아마도 얘길 하다 보면 속에서 불이 날 지경일 수 있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이 아닐까? 아들에게 바라는 기대치에 늘 부족한 아들에게 역정을 내고 다그치고 그럴수록 아이는 주눅이 들었던 것이 아닐까?

 녀석은 가장 큰 불인 수학에서 자신감을 얻고 있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녀석을 소개한 국어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 선생. 어제 홍이가 내게 선물을 가져 왔어. 난 말이야 내가 너무 잘 가르쳐서 그런가 했는데, 녀석이 뭐라는 줄 알아?”

“뭐랬는데요?”

“좋은 수학선생님을 소개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엄마가 갖다 드리랬다 는 거야. 내 살다 살다 이런 선물은 처음 받아본다.”


 녀석은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88점을 받아 1등급이 되었다. 그런데 그 해 대학 원서를 쓰지 않았다. 내가 어디에라도 붙어 놓고 준비해도 된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하면 재수에 몰두할 수 없으니 원서를 쓰지 말라고 한 모양이다.


 녀석은 재수를 하러 바로 경기도에 있는 모 기숙학원으로 갔다. 열심히 하고 있을 줄 알았던 녀석이 9월 모의고사가 끝나고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힘이 없는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야? 뭔일 있어?”


녀석이 왔다.

기숙학원에 갈 때 신신당부를 했던 그 동안 공부했던 노트도 잃어버리고 거기서 여자를 사귀다가 헤어져 공부를 못했다는 거였다. 어찌 이런 일이…….


“그런데 왜 이제야 연락을 한거야?”

“샘한테 너무 미안해서…….”


성적이 너무 떨어져 있었다. 거의 5~6등급이었다. 어찌 이 지경이 될 수 있는지 믿기지 않았다. 한 달 반 동안 수습을 했지만 결국 시간이 모자랐다. 결국 녀석은 경기도에 있는 모 대학을 갔다. 안타까운 일이다.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계적으로 가르치고 기계적으로 배운다고 해서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야 한다. 그것이 가르침이고 배움이다.   



신영호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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