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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May 09. 2022

하면 된다

 “신 선생, 아이 하나 맡아주라. 돈도 많이 못준다.”

“네?”

“집안 형편이 썩 안 좋아”

“일단 보내 보세요”


 아는 영어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처음엔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비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얘기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녀석은 씩씩했다. 수학이 너무 어렵단다. 성적을 물으니 26점이란다. 그때가 1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때였다. 그 동안 열심히 과외를 받았는데도 성적이 점점 떨어진다고 했다.


“방법을 바꿔보자. 선생님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겠어?”

“네, 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맡아만 주십시오. 선생님”


 아마도 영어선생님에게서 뭔가 조언을 받은 듯 했다. 무조건 졸라라. 무조건 맡아 주십사 해라는 절대적 지령 같은 거라고나 할까?


“어차피 방학 때는 시간이 난다. 문제는 방학 끝나면 시간이 없을 수 있다. 너 하기에 달렸다. 네가 잘릴지 누가 잘릴지는 아무도 몰라. 그건 그때 결정이 날거다. 그래도 시작할거냐?”

“네,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녀석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정말 못 말릴 녀석이 왔다. 녀석은 아침 9시면 어김없이 도착을 했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모두가 자습실에서 공부를 한다. 내가 가끔 수업 중 나와서 자습하는 아이들을 챙긴다. “질문 있는 사람?” 그리고는 논점을 집어 주고 들어간다. 절대로 내가 끝까지 풀어 주는 일은 없다. 함께 논점만 짚어나가는 것이다. 그래도 못 풀면 다른 아이에게 지시한다. 누구야 이 문제 설명 해줘라라는 식이다. 모든 건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거나 함께 해 나간다. 내가 운동할 때 배우던 것을 벤치마킹했다고 볼 수 있다. 높은 유단자가 아래 급 아이를 지도하는 형국이다. 3단이 2단을 2단이 초단을 초단이 급수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이다. 학원에서 나는 학년은 완전히 무시했다. 모든 건 실력 위주였다.

 녀석은 점심때가 되면 30분이나 걸리는 집까지 갔다가 다시 와서 공부하고 또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와서 공부를 했다. 왕복 1시간씩이면 그 만큼 공부를 못하지 않느냐 했더니 자기의 유일한 운동이랬다. 정작 본인의 수업은 일주일에 두 시간씩 두 번의 수업이 전부이지만 하루 종일 공부하는 시스템이었다. 빈 강의실에는 아이들끼리 모여서 한참 문제를 풀고 있었다. 내가 지정하는 아이가 선생이 되는 식이었다.


 ‘가르치는 게 최상의 공부다’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이야기다. 남을 가르치면서 확실한 개념을 정리하고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접근하는 법을 깨닫게 되는 것임을 아이들에게 주지시킨다. 모든 아이가 학생이자 선생이었다. 어떤 아이는 역사에 어떤 아이는 생물에 제각각 잘하는 분야가 있다. 그 과목에는 그 아이가 선생이 되었다.


 역사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지금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 아이가 학원에 다닐 때다.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샘, 누구누구는 학교 샘보다 더 잘해요.”

“그런 소리 하는 게 아니야”

“진짜에요. 학교에서 샘이랑 역사 얘기하다가 쟤가 이겼어요”


녀석을 따로 불러 얘기했다.


“앞으로는 수업시간에 선생님한테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따로 교무실에 가서 얘기를 해라. 그건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선생님은 역사 선생님이시지만 모든 영역에 해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선생님도 특정한 시대에 취약할 수 있는 것이다. 알겠어?”

“네…….”


녀석은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아이들이 그런 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제 놈이 선생이 되어야 내 말을 이해 할 것이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다시 돌아와서 그 녀석은 아침 9시에 와서 밥 먹으러 왔다 갔다 하는 시간과 다른 과목 공부하러 갔다 오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공부만 했다. 거의 수학공부였다. 밤 11시가 되어도 집에 갈 생각을 안했다.


“야, 이제 집에 가”

“아 샘 죄송합니다. 요것만 정리하고 갈게요”

“얌마, 샘도 사생활이 있자나. 네가 가야 정리를 하지”

“샘, 그냥 제 신경 쓰지 마시고 사생활하세요”


 녀석은 늘 이런 식이었다. 방학 동안에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 모른다. 머리가 터지겠단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방학 때 하는 공부를 좋아했다.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땀 흘리며 격렬히 운동하고 난 뒤에 맛보는 희열 같은 걸 것이다. 어떤 녀석은 여름 방학이 끝나면 바로 겨울방학이 기다려진다고 할 정도였다.


 2학기 중간고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녀석은 방학 동안에 수학기초와 1학기 과정을 모두 마쳤다. 2학기 중간고사를 대비했다. 모의고사를 무려 12회나 풀었다.


“샘, 모의고사 더 없어요?”
 “얌마, 내가 너만 가르치나. 이노무시키야”


 그러면서도 녀석이 틀리는 문제유형을 위주로 또 모의고사 문제지를 편집해 줬다. 하려고 하는 놈에겐 무한정 떠먹인다. 그게 내 지론이었다. 시험이 3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녀석은 초조해하기는커녕 빨리 시험을 치고 싶다며 난리였다. 오히려 시험날짜가 빨리 안와서 초조해 하는 듯 했다. 시험이 끝난 날 전화가 왔다.


“쌤, 두 개 틀린 거 같아요.”

“뭐야? 진짜야? 오 마이 갓”


0.1점 차로 전교 2등이랬다. 어찌 이런 일이?? 오히려 내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며칠 있다 녀석이 오자마자 씩씩됐다.


“왜? 무슨 일 있어?”

“샘한테 불러 갔다 왔어요.”


학교에서 커닝을 의심해 불려갔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네가 1학기 점수가 형편없었는데 당연히 선생님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어. 네가 실력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알겠어?”

“네…….”


 녀석은 기말고사에서도 두 문제를 틀려 전교 1등이 되었다. 이번에도 0.1점차로 1등이 된 것이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2학년 첫 시험에서 문과 전교 3등에 올랐다. 3학년이 되어서도 졸업 시까지 줄곧 전교 3등을 유지했다. 전교 1등을 못한 아쉬움이 컸겠지만 우리는 만족했다“


 고 3 어느 날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아침 운동을 나갔다가 실족사 했다는 거였다. 황망했다. 무슨 위로가 필요할까. 어머니에게 용기를 내시라 했다. 녀석에게는 모진 말을 했다.


“이제 네가 가장이다. 약해지면 안 된다. 네가 약해지면 어머니가 더 힘들어 하실 거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쌤”


 3학년 3월 6월 모의고사에 1등급을 받았다. 여름방학부터는 수학을 끊고 국어를 하러 보냈다. 수학은 지금 실력을 유지하면 1등급은 무난하다고 보았다. 녀석은 그해 SKY의 K대를 진학했다. 경영학과를 가고 싶어 했지만 안정권으로 러시아어학과로 갔다. K대는 복수전공이 잘 되어 있으니 가서 복수전공을 하라고 일렀다. 녀석은 경영학과 복수전공을 했다.


“샘, 학교 교수님이 샘하고 똑 같은 말을 했어요. 깜짝 놀랐어요”


과 교수님 말이 어학은 기본 베이스고 이를 토대로 경영학 등의 복수전공을 하라고 한 모양이었다. 내가 한 말과 똑 같았으니 녀석이 놀랄 만 했겠다. 녀석은 학교 장학금과 사설단체의 유학지원프로그램에 참가해 장학금을 지원 받아 러시아로 1년 유학을 다녀왔다. 거기서 대사관 직원의 아이들의 수학을 지도하게 되었단다. 수시로 보이스톡으로 전화가 와서 물었다.


“샘, 이러이러 한데 문제가 뭘까요?”


 내가 뭐라고 하면 “역시 샘. 저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은 CPA 1차를 합격하고 2차를 준비하고 있다. 하면 된다. 기초가 없다고 포기하지마라. 문제는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신영호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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