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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May 12. 2022

30점 맞았다고 싱글거리던 아이

  덩치가 산만한 녀석이 어머니와 함께 상담을 하러 왔다. 수학이 너무 안 된다는 거였다. 내게 오는 녀석들은 대개 소개로 온다. 어머니는 모 대학교수였고 아버지는 산부인과 의사였다. 그렇다면 유전자도 나쁘지 않을 터인데 어째서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결국에는 방법론이다. 배움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가르침에도 문제가 있다. 천편일률적인 가르침으로는 제각각의 아이들을 끌어올릴 수 없다. 똑같은 소고기지만 그것으로 똑같은 요리를 해서 모든 아이들에게 줄 수 없는 것과 같다. 어떤 아이는 구이로 어떤 아이는 스테이크로 어떤 아이는 샤브샤브로 각 아이들에게 맞게 요리를 해서 주어야 하는 것과 같다.

 성적을 물으니 29점이란다. 고2 문과 진학이었다. 방학 때 기초를 마무리해야 한다. 그래야 중간고사에 대해 어느 정도 대비가 될 것이다.


“열심히 할 수 있겠어? 여기는 빡세다는 얘길 들었지?”

“네”

“그럼 마음 준비가 되었다는 거네.”

“네”


 그렇게 녀석과의 공부가 시작되었다. 제법 생각은 깊은 아이 었다. 정치와 사회에 대한 관심도 높고 상당한 식견도 가지고 있었다. 녀석은 대학을 들어가서 모 정당에 가입해서 청년 당위원회 지역분과장인 가도 활발히 했다. 고등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치 사회문제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을 했다. 가끔씩 기자들과의 통화에서 기자들에게도 항의도 하고 화를 내는 모습도 보였다. 녀석의 논리에 기자가 오히려 쩔쩔매는 모양새였다. 하여간 명물이었다. 물론 정치외교학과를 갈 것이라고 했다.


“최소한의 학력이 있어야 한다는 건 인정하냐?”

“네, 서울로 가거나 최소한 부산에서는 부산대를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성적으로 어림없다는 것도 알겠네”

“네,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온 거 아닙니까. 허허허”


 하여간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잘 키우면 좋은 재목이 될 놈으로 보였다. 가르침에는 잘 따라주었다. 기초가 워낙 없어서 문제였지만 과제나 해오라는 예습도 철저히 해왔다. 생각대로 동안의 가르침에 문제가 있었다. 녀석과 맞지 않는 학습 핀트 또는 녀석의 신뢰를 잃은 선생님과의 억지스러운 관계로는 녀석의 학습의욕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소개한 영어 선생님과는 고작 석 달을 넘지 못했고 서로 불만과 탓을 돌리고 있었으니 그 스타일을 짐작할 것이다. 녀석의 기에 눌러져도 안 되고 실력이나 그 외의 인성 등에서도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되는 녀석이었다. 녀석이 학교 공부가 엉망인 이유도 거기에 있는 듯했다. 예로 내가 소개한 국어 선생님에 대한 평가는 지대했다.


“샘, 그 샘은 과히 국어의 신이십니다. 저희 어머니도 그 샘의 내공이 지대하시다고 했습니다.”


녀석의 어머니가 국문학과 교수였는데 어머니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그분의 능력을 인정하셨다는 거였다. 그런 관계에서는 무한의 신뢰 속에서 사람을 따랐다.


 학원에 온 후 처음으로 학교 시험을 쳤다. 전화가 왔다.


“쌤, 대박이예요.”

“뭐? 몇 점인데?”

“30점이요”

“뭐야? 지금 장난해?”


녀석은 학원에 와서도 싱글벙글거렸다. 뭐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모습이었다.


“야, 넌 뭐가 그리 좋아 싱글벙글거리고 있어 임마”

“우와……. 샘 기쁘지요. 제가 30점을 맞았다니까요”

“너 예전 학원 상담하러 왔을 때 29점이라 하지 않았어?”

“아 그거 쪽팔려서 10점 올린 건데요. 그리고 저 이태 껏 모두 찍어서 맞춘 거거든요.”


 기가 찼다. 그런데 이번엔 자기가 알아서 직접 풀어서 받은 점수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냐는 것이었다. 녀석의 말에 일리가 없지도 았다. 기본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기말고사는 39점이었다. 모의고사 역시 비슷한 수준이었다. 2점짜리는 올킬이었고 3점짜리도 절반 이상은 맞추었다. 녀석의 말대로 모두 알고 푼 것이고 찍은 것은 다 틀렸다는 거였다.


 여름방학이 왔다. 녀석은 유달리 여름에 힘을 못 썼다. 130kg가 넘는 비만 체질 때문이었다. 학원에 오면 땀을 뻘뻘 흘렸다. 옷이 다 젖어 엉망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샤워부터 시켰다. 여분의 옷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이 오면 수업 준비까지 완전한 컨디션을 갖추라고 한다. 잠이 모자라는 녀석은 10분에서 20분 정도 재운다. 수업 중에 졸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일취월장. 이 말을 자주 쓴다. 아이들의 실력이 정말 일취월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런 건 아니다. 나 또한 실패하는 아이가 있고 중간에 그만두는 아이도 퇴학조치를 내리는 아이들도 있다. 또한 공부 외에 다른 길로 유도하는 아이들도 있다. 학교도 아닌 학원에서 퇴학을 시키냐고 학원에 와서 항의가 아닌 행패를 부리는 아버지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나의 결정에 수긍했다. 잘린 아이들 중에는 다시 받아달라고 장문의 편지를 보내는 아이도 있었다.


 녀석의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계속해서 내가 신경 쓰는 것은 영어였다. 영어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를 잃고 계속해서 독학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렇다고 성적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고민을 했지만 녀석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고3이 되었다. 3월과 6월 모의고사에 3등급이 나왔다. 내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녀석은 만족을 했다. 그러나 더 가야 했다. 나는 3월 6월 모의고사에 1등급을 받는 아이들은 수학을 끊고 국어 등 여타 과목을 공부하라고 보낸다. 그러나 3등급 이하의 아이들은 수능 전까지 끝까지 간다. 그 해 끝까지 간 3명의 아이들 중에서 한 명은 1등급을 2명은 3등급을 받았다. 이 녀석은 3등급으로 마무리를 했다. 부산의 한 국립대 정외과에 합격을 했다. 그러나 곧바로 재수를 시작했다. 경기도의 모 기숙학원으로 갔다. 6월 모의고사에서 1등급을 받았다고 전화가 왔다. 그해 수능이 끝났다. 녀석이 목표를 하던 부산대에 또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결국은 영어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사람 간에도 궁합이 있다. 그래서 선생을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와 잘 맞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운이다. 그러나 그 운도 자기 하기 나름이다. 녀석은 지금 가끔 찾아오면 꼭 그 말을 한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럼 되었다. 늘 건투를 빈다.




신영호 作/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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