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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May 13. 2022

수학에 공포를 느끼는 아이


 어느 날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엄마랑 함께 학원에 왔다. 상담을 하니 중학교 때는 공부를 잘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수학 성적이 너무 떨어졌다는 거였다. 그때가 고2 4월 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최근 친 시험 점수가 39점이라고 했다. 상담을 마치고 아이와 엄마가 가고 나니 얘들이 난리가 났다.


“쌤, 저 애 우리 학원에 와요?”

“응 그럴 거야. 왜?”

“쟤 엄청 공부 잘하죠? 우리 중학교 때 전교 1등이었어요.”

“그래?”


 의아했다. 중학교 때 전교 1등 하던 애가 저렇게 망가질 수가 있나? 뭐가 문제일까? 남자애들도 문제지만 여자 아이들은 훨씬 더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걸 보긴 했다. 다행히 이 아이도 문과생이었다. 문과는 이과보다 훨씬 수월하다. 조금만 푸시를 하면 쉽게 일어날 수가 있다. 문제는 원인을 찾는 것이다.


 아이와 공부를 시작하고 여러 번의 상담을 통해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원인은 수학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시험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원인이 고등학교 첫 시험이었던 것 같았다. 고1 첫 중간고사 점수를 잘 받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보였다. 중학교 때 백점을 받았는데 고등학교에 와서 처음 60점대의 점수를 받은 것이다. 두 번째로는 타인들의 시선이었다. 아니 자격지심이었다. 아이들 보기가 부끄러웠다고 한다. 자기보다 못하던 아이들이 자기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았고 그에 대한 자괴감이 컸던 것 같았다.


“공부 방법부터 바꿔야 한다. 고등수학은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확하게 분석을 하고 하나하나 접근하는 법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알겠어?”

“네…….”

“그리고 주눅 들 필요가 없다. 남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모든 건 너만의 문제인 것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네…….”


 녀석은 곧잘 했다. 중학교 때 잘했다더니 대수와 기하의 기본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문제는 응용능력이었다.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은 다르다. 문제 속에 녹아 있는 논점을 찾아 무엇을 가지고 와서 이것을 풀어내야 하는지를 빨리 캐치를 해야 한다. 드라이버를 써야 할지 망치를 써야 할지를 판단해서 적재적소에 써는 것과 같은 것이다. 드라이버를 써야 할 곳에 망치를 쓸 수 없고, 망치를 써야 할 곳에 드라이버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공부를 시작하고 첫 번째 치르는 시험이 다가왔다. 6월 모의고사였던 걸로 기억을 한다.


“이번 시험 목표는 39점이다. 알았어?”

“네…….”

녀석은 탐탁지 않는 모양이었다.


“왜? 만점 맞을라고?”

“아니요”

“높게 잡을 필요 없어. 언제나 목표는 앞서 받은 점수야. 알았어? 그만큼만 남기고 모두 버려라.”


 나는 시험지를 받으면 버릴 문제를 먼저 골라내라고 한다. 골라서 과감하게 돼지꼬리를 달라고 한다. 39점이 목표면 반을 날려도 된다. 다 날리고 남은 문제만 최선을 다해서 풀어라. 만일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딱 한 문제만 가지고 와서 풀어라. 두 개 세 개를 더 풀려고 하다 보면 망친다. 딱 하나만 풀어라. 만일 그러고도 시간이 나면 또 하나를 그런 식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시험에는 요령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지 시킨다.


 공부를 마치고 나가는 녀석의 어깨를 툭 치며 내가 말했다.


“이번 시험 목표는 몇 점?”

“39점이요”


녀석이 웃으며 말했다.


“편하게 치고 와. 다 틀려도 돼. 알았어?”

“네”


 녀석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내가 어떤 전략으로 접근하는지를 이해한 것이다. 그 시험에서 녀석은 78점을 받았다. 어렴풋이 희망이 보였다. 녀석도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얻은 시험이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 수학시험이 끝났나 보았다.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쌤, 하나 틀린 거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소름이 돋고 눈물이 돌았다. 내가 왜 눈물이 나고 지랄이야? 나는 연신 잘했다고 하고 다른 시험도 잘 치라고 했다. 그 시험에서 수학 성적이 전교 1등이었다. 기말고사에서도 1등을 했다. 그때부터 녀석은 전교 1등을 되찾았다. 아니 고등학교에 와서는 처음이었으니 되찾은 건 아니다. 처음으로 우뚝 선 것이다. 고2 11월 모의고사에서는 만점을 받았다. 내가 놀렸다.


“와~~ 이제 수학 전국 1등이네”

“아 쌤, 전국 1등이 뭐예요?”

“야 이 녀석아. 만점이면 전국 1등이지. 동점자가 몇 명이든 다 전국 1등인 거야.”


녀석도 기분은 좋은가 보았다. 연신 싱글거렸다. 수학에 대한 공포 아니 수학시험에 대한 공포를 털어내자 녀석은 금방 자신감을 찾았다.




 3학년에 올라와서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샘, 저 전과하면 안 될까요?”

“뭐? 전과? 지금 와서 그게 무슨 말이야?”

“저 사실은 한의학과를 가고 싶었거든요”


 지금 3월이다. 전과는 늦다. 이과 수학을 지금 몇 개월 동안에 해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수학뿐만 아니다. 물리 화학 생물도 해야 한다. 할 게 너무나 많다. 아무리 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전과는 포기하고 대학을 붙어놓고 재수를 생각해 보자고 했다.

녀석은 성균관대에 합격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재수를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한의학과는 지원한 모든 대학에서 탈락을 했다.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녀석은 그다음부터는 아예 미련을 버린 것 같았다. 요즘은 문 이과 구별 없이 통합교과가 되었다. 잘한 정책이다. 아이들은 고등학교까지 대부분 자신의 적성을 찾지 못한다. 그러니 대학을 졸업하고도 제 전공을 찾아먹는 경우가 드물다. 교육이 더 바뀌어야 한다. 초중고등학교 때 입시 위주의 공부가 아니라 자기의 적성을 찾는 공부를 해야 한다. 자질은 어릴 때부터 나온다면서도 학교교육은 그렇게 시행되지 않고 있다. 모든 것이 형식적이다. 미술교육 음악교육 체육교육을 보면 사교육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한다. 눈감고 아웅 하기다. 모든 건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다. 교육 혁명이 필요하다. 교육이 중심이 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미래를 이끌 수 있는 국가는 교육대국인 것이다.




신영호 作/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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