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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Jun 06. 2022

그놈은 학교 짱이었다 3




수학과인 J선생이 수업을 하고 교무실에 와서는 푸념을 쏟아내고 있었다. 어떤 녀석 때문에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여기저기 그 반에 들어가는 선생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울분을 토해냈다. 그냥 두어서는 그 반 전체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소위 가장 성적이 낮은 문제아 반이었다. 가장 큰 문제를 안고 있는 녀석은 울산의 모 고등학교에서 짱을 먹었다는 ○○이었다. 회의 끝에 다음 J선생 수업시간에 내가 들어가서 ○○의 기를 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럴 경우는 힘겨루기다. 선생이 밀리면 종강할 때까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그러면 그 반 전체가 몰살하게 된다.


“오늘은 J샘이 일이 있어서 내가 대신 왔다.”


녀석이 앉은자리와 인상착의를 듣고 왔으니 예의 주시를 했다. 녀석이 비스듬히 앉아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거기 바로 좀 앉아라”


녀석이 느릿느릿 이번엔 반대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하고 앉았다. 짱들은 그 반에서 소위 자신의 가오가 있기 때문에 선생의 지시에 순하게 따르지 않는다.


“거기, 너. 바로 앉아”


이번에도 느릿느릿 자세를 고쳐 앉았지만 뒤로 비스듬히 앉았다. 이제 시작할 때가 왔다.


“야. 너 바로 앉는 게 뭔지 몰라? 일어서.”


고함을 질렀다. 그럼에도 그 녀석은 느릿느릿 일어섰다. 일어선 폼도 거의 짝다리로 서 있었다.


“바로 서, 바로 서라고”


가라앉은 낮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듣던 것보다 심각한 놈이었다. 그 녀석의 껄렁한 동작과 순간 스친 코웃음으로 나의 응징이 들어갔다. 순간적으로 녀석의 목줄을 잡았다. 검도를 수련한 나는 손아귀 힘이 좋다. 그 녀석의 목줄을 잡고 소리쳤다.


“입 꽉 다물어”


그러고는 세대를 연속 쳤다. 세 번째는 손을 놓으며 때렸기 때문에 녀석이 뒤로 쓰러지며 몇 개의 책상이 넘어갔다. 여자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밖에 나가 꿇어앉아 있어”


순간 교실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우는 여자 아이도 있었다. 일장 훈시를 했다.


“재수하러 와서 공부한다는 녀석들이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 이렇게 공부하려면 다 보따리 싸고 가”


여기저기 아이들이 훌쩍였다. 이럴 때면 나도 가슴이 아프다. 그렇지 않으면 그게 인간이겠는가?


폭력? 혹자는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안 된다고 한다. 아마 이 글을 읽은 분들의 많은 질책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아이들의 경우는 말로써 또는 매로서 바로잡아지지 않는다. 이건 나의 변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때론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나가서 녀석 들어오라고 해”


문을 열고 나갔던 아이가 밖에 없다고 했다. 아이들더러 찾아오라고 했다. 나갔던 애들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학원 밖은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자습을 하라 하고 내가 직접 찾으러 나섰다. 아이들이 쉬이 찾지 못하는 곳에 있다? 그렇다면 거기뿐이었다. 옥상으로 올라갔다. 녀석은 옥상 물탱크 옆에 꿇어앉아 있었다.


“따라와”


교무실로 데리고 왔다.


“꿇어앉아”

“공부하기 싫은 녀석이 여긴 왜 왔어? 여기가 너 놀이터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반항은 하지 않았다.


“가서 가방 싸서 와라.”


내가 나직이 말했다. 녀석이 꼼짝하지 않았다.


“가서 가방 싸서 와. 회비와 치료비는 내가 낼 테니 가라. 나가서 폭행 신고도 해라”


녀석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뭐라? 큰소리로 얘기해”

“공부하겠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그러지 말고 가서 짐 싸서 와”


그 사이 수업 시간이 끝나서 선생님들이 교무실로 와서 거들었다.


“신 선생, 이제 공부한다니 그만 용서해 줘”


녀석에게 다짐을 받고 올려 보냈다. 대책이 필요했다. 다음날 원장에게 보고를 하고 대책을 냈다. 이대로는 안 된다. 특별반 하나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기초가 아예 안 되는 녀석들을 모아 따로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했다. 학원에서 반을 하나 만든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이다. 수업시수로 선생의 페이가 나가기 때문에 원장으로서는 금전적인 문제가 따른다.


원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특별반이 만들어졌다. 문제아적인 요소를 가진 아이들에게 특별반의 취지를 말하고 강제가 아니라 자율적이라고 말했다. 녀석이 그 반에 들어가겠단다. 그 녀석을 따르는 꼬봉들도 들어왔다. 대략 열서너 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수학은 J선생이 맡았다. 내가 수시로 체크를 했다. 그때부터 녀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질문을 하러 왔다.


“야, 너 네 샘이 있는데 왜 나한테 오는 거야? 가 임마”


녀석은 굳이 나더러 설명해 달란다. 꼬봉 세 놈과 함께 네 놈이 몰려왔다. 숙제도 내줬다. 체크를 했다.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해 왔다. 녀석이 중심이 돼서 그 반이 열공하는 모드로 바뀌었다.

녀석들은 한 달에 한번 1박 2일 외박을 나간다. 어느 날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 백화점에 아내랑 애들을 데리고 갔다. 입구 공터에서 웬 얘들이 모여 “예” “예”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하고 쳐다보는데 녀석이 서 있고 꼬봉인 듯한 얘들이 깍듯이 예를 갖추고 있었다. 내가 녀석을 불렀다.


“야, 이리 와봐”


녀석이 나를 보더니 후다닥 쫓아 왔다.


“뭐야? 너희 깡패야? 지금 뭐 하는 거야 임마?”

“아닙니다. 얘들이 저 간다고 배웅을 와서”

“그래도 사람들 많은 곳에서 그러면 민폐 아냐?”

“죄송합니다. 샘. 곧 해산하겠습니다.

“얘들 밥은 먹었나? 샘이 밥 사줄 테니 다 데리고 와”


녀석은 괜찮다고 했다. 지금 차 시간이 다 돼서 가야 한단다. 학원에서 뵙겠다고 했다. 근본이 나쁜 녀석은 아니다.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갈 거 같았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 날 녀석이 와서 아버지가 샘 한 번 대접을 하고 싶다고 하신단다.


“됐어. 대접은 무슨 대접이야?”

“아버지가 집에 개가 시끄럽다고 동네 사람들이 항의를 해 이번 참에 개를 잡는데요”

“뭐?”


옆에서 듣고 있던 선생님이 같이 가자고 부추겼다. 결국 영어 샘 가족과 국어 샘 가족 그리고 우리 가족이 가기로 했다. 울산 태화강 언저리에 녀석들이 텐트도 치고 모든 걸 세팅을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특별반 남녀 학생들이 다 모여 있었다. 아버지가 경운기로 고기를 날라 왔다. 인사를 드렸다. 아이한테 샘 얘기를 많이 들었다.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그날 아이들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수능을 치고 대학 원서를 냈다. 녀석들은 모두 4년제 대학에 합격을 했다. 특히 녀석은 법대에 합격을 했다.  

 

 

 

신영호 作/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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