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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Jun 07. 2022

그 아이 별명은 짐승




녀석의 어머니는 처음 상담하러 온 날부터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아이는 테스트를 풀러 밖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보지 못했다. 나쁜 아이들과 어울려 공부를 안 한다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선생님에 대한 말씀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공부는 못해도 되니 아이를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애원을 했다. 소위 약간의 문제아였다. 고2였는데 학원에 있는 같은 학교 1학년부터 2학년까지 긴장을 하는 게 보였다.


 시간을 갖고 아이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며칠간 공부는 거의 않고 기만 나눴다. 아이의 내면을 이해하는 게 우선일 듯해서다. 공부보다 중요한 게 마인드다.


“지금 현재 뭐가 제일 재밌어? ‘

“운동하고 게임하고 노는 거요”


무슨 운동이냐고 물었더니 축구랑 농구랬다. 어디서 주로 하는지도 물어보고 시간대도 물어봤다. 게임도 물어보니 다행히 내가 조금 아는 스타크래프트였다.

맞장구도 치고 잘하는 법도 아이에게 배웠다. 게임을 물으면 그놈이 선생이었다. 신이 났다. 한날 걔들이 운동을 한다는 곳엘 가봤다. 조명도 제대로 없어 공도 보이지 않는데서 열심히 농구를 하고 있었다.


“야, 너 네들 뭐가 보이냐??”

“아 쌤, 어쩐 일이에요? 다 끝나가요”


녀석은 게임을 하면서도 대답을 했다. 잘했다. 무엇보다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아 그냥 운동해. 좀 일찍 끝내고 공부도 좀 해라”

“예 샘~ 들어가세요.”


일요일 아침에는 학교 운동장엘 가봤다. 축구가 한창이었다. 녀석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쌤~~ 나중에 갈게요~”


정말 성난 황소같이 뛰어다녔다. 녀석의 별명이 아이들 사이에 “짐승”이었는데 그 이유를 조금은 알 듯했다. 또래 중에 소위 “짱”이었다.


 아이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정확한 기억은  없다. 아마도 남자로 사는 법, 집안 이야기,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였을 것이다. 확실한 건 엄마의 눈물에 대한 얘기를 했다. 녀석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듣고 있었다. 생활습관부터 바꾸기를 권했다. 공부할 때는 핸드폰을 꺼두는 게 좋겠다. 공부 시작 전에 미리 “나 몇 시까지 공부하니 톡 못한다.”라고 아이들에게 알려라고 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답을 주는 게 좋겠다고 했다. 잘 때도 거실에 두고 방에 들어가라고 했다. 다행히 아이가 잘 따랐다.


어느 날부터 이 녀석이 조금씩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그게 느껴진다고 했다. 고맙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부하러 온 녀석에게서 술 냄새가 났다.


“술 마셨어?”

“예 샘 죄송합니다. 친구 생일이라…….”


야단을 치지 않았다.


“어 그래? 근데 어디서 마시는 거야?”


자기들이 가는 아지트가 있다고 했다. 특별히 사장님이 뒷문을 허용한단다.


“어? 그 사장님 멋지네. 나랑 잘 통할 거 같은데?”

“어? 안 그래도 그 사장님이 쌤 멋지다던 데요”


진짜 딱 한잔 건배하고 자기는 공부하러 온 거란다.


어느 날 오더니


“쌤, 당분간 애들이랑 안 놀기로 했습니다.”

“뭐? 그러다 왕따 되는 거 아니야?”

“아 개들 제 좆밥이라서 괜찮아요.”


 어머니가 전화가 왔다. 또 울고 있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근데 저러다가 얘들한테 왕따 되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잘하고 있고 잘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 후 아침 일찍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새벽에 녀석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장례식장에 갔더니 두 형이 와서 인사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녀석과는 이복형제였다. 큰형은 녀석을 잘 챙기는 듯 보였다.

장례식이 끝나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큰 애들이 상속문제로 다그친다는 얘기였다. 부동산 명의와 현금 관리 상태를 물으니 모두 어머니 명의로 되어있고 돈 관리도 어머니가 하고 있다고 했다. 다행이라 말씀드리고 큰 애들과 잘 상의하시라 했다. 내가 아는 변호사를 소개해 드리고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


 아이가 침울했다.


“너는 그 일에 왈가왈부하지 마라. 엄마와는 달리 너는 형제 자나.”


녀석은 형들이 엄마에게 너무 심하다고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였다.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지금까지는 엄마가 너 보호자였지만 이제부터는 네가 엄마의 보호자란 거다. 그걸 잊지 마라. 엄마는 너뿐이야”


그날부터 아이의 태도가 확고해졌다. 아이는 경찰대를 가고 싶다고 했다. 성적이 거기까지는 한참 못 미쳐서 차선책에 대한 얘기를 해줬다. 경찰행정학과나 해양조선공학과에 가서 석사학위 이상을 갖는 것 등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때부터 녀석은 공부를 엄청나게 열심히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남자 중에 1등을 했다. 그래도 녀석은 별 기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앞에 여학생이 6명이나 버티고 있다고 했다. 6등이 되어야 내신 1등급이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또 우는 목소리였다.


“선생님, 살면서 이런 일도 있네요. 너무 기쁩니다.


성적 애긴 줄 알았더니 오늘 밖에 소송일로 나갔다 오니 아이가 마중을 나왔더란다. 공부 안 하고 왜 나왔냐고 했더니


“내가 엄마 보호자자나. 엄마가 걱정돼서 나왔지”


하더란다. 지금까지의 속상함과 힘든 마음이 눈 녹듯 내려앉았다고 했다. 녀석은 경찰대는 가지 못하고 부산의 국립대 해양조선공학과를 갔다. 입시가 끝나고는 곧바로 알바 전선에도 뛰어들었다. 씩씩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나는 아이들을 믿어주는 어른이 되라고 한다. 그들을 다그치지 말고 지켜보면서 격려해주는 어른과 선생. 나는 그것이 우리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가장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을 한다.


 아이들은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도 하나의 인격으로 보고 대해 달라는 것이다. 무엇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할까? 부모님들에게 물어보면 모든 건 아이의 미래를 위한 거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눈앞에 있는 확실한 현재에 아이들에게 고통과 불행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는지 한 번쯤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신영호 作/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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