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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Jun 09. 2022

선생님 우리 애 1등급 만들어 주세요

 




 영어 선생님에게서 한 녀석을 맡아달라는 전화가 왔다.


“신 선생, 애가 영어는 잘하는데 수학이 좀 안 돼. 신 선생이 맡아주면 고맙겠는데…….”


 선생님들의 부탁은 거절을 잘 않는다. 서로가 그렇다. 일종의 예의이기도 하지만 그건 모종의 끈으로 연결된 끈이 끊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서로의 레벨에 따라 국영수 과학이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어떤 과목의 선생님이 나와 연결이 되고 싶어 해도 쉽게 들어올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더 잘 안다.

 당시 비는 타임이 없었지만 일단 상담이라도 해볼 테니 보내보라고 했다. 곧 여름방학이었기 때문이다.


“성적표 들고 왔어?”

“아니요?”


나는 아이들의 성적표를 꼭 확인한다. 객관적인 판단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일단 테스트를 해보고 얘기하자”


녀석이 테스트를 끝내고 채점을 해보니 엉망이었다.


“공부를 안 하나?”

“하는데요. 지금 수업하는 곳의 진도랑 안 맞아서…….”

“무슨 소리야? 이건 다 배운 거자나.”


틀린 것을 모두 조목조목 설명을 해주고 말했다.


“안 배운 거 있어?”

“아니오.”

“나한테 공부를 하러 오든 아니면 지금 다니는데 다니던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야. 하지만 늦으면 늦을수록 기회는 사라진다. 알겠어? 어머니와 상의하고 전화해.”


녀석은 바다 위 다리를 하나 건너 해운대까지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며칠 뒤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한테 가겠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때가 고2 여름방학이었다. 성적표는 이랬다. 7, 7, 7

1학년 1학기 7등급, 2학기 7등급, 2학년 1학기 7등급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잘한다던 영어성적도 듣던 것과 달랐다. 녀석에게 물으니 영어 선생님은 성적표 확인을 안 한다고 했다.

영어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선생님, 녀석 성적표를 확인 안 해 보십니까? 확인해 보십시오.”


 녀석은 성적표 위조도 한다고 했다. 부모님에게는 위조한 성적표를 보여준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곧바로 어머니께 연락을 했다. 직접 학교에 가서 담임 선생님께 확인을 하고 오시라 했다. 비상이 걸렸다.


“너 솔직히 말해봐. 그쪽 학원 선생님이랑 당구도 치고 했지?”

“네”

“같이 밥도 자주 먹지?”

“네, 근데 샘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 샘 아세요?”

“뻔한 거 아니야. 너 성적 보면.”


 녀석에 대해 주변 아이들을 통해 더 알아봤다. 아이들이 알아와 내게 전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녀석의 별명은 ‘또자’였고 야동 마니아라는 것이었다. 어머니에게 사실을 말했다. 어머니는 처음엔 펄쩍 뛰었다. 녀석에게 그럴 시간이 없을 거란다. 그래도 모르니 챙겨보시라 했다. 다행히 그 당시 형이 방학이라 집에 내려와 있었는데 컴퓨터를 잘 다룬다고 했다. 형이 찾아낸 엄청난 양의 야동에 어머니는 충격을 받았다.


“야단을 치지 말고 조용히 불러 사실만 얘기하십시오. 절대 야단을 치면 안 됩니다.”


그 일 후로 공부에만 전념하겠다고 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녀석이 말했다.


“우와 샘. 여태껏 저는 공부한 게 아니네요.”

“아니 다행이네”


 녀석은 2학기도 그다지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문과면 좀 더 쉬웠을 테지만 이과는 확실히 무리가 있다.


겨울방학이 왔다. 녀석은 제법 수학에 흥미를 느꼈다. 공부량이 엄청났다. 자연히 실력이 많이 늘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3학년 3월 모의고사를 쳤다. 3등급이었다. 그때 어머니가 한 말이 기억난다.


“선생님, 우리 애 1등급 만들어 주세요.”


1등급이라... 이제 겨우 3등급에 들어섰다. 못해 낼 이유는 없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들은 이렇게 말을 쉽게 한다. 3등급이 2등급이 되고 2등급이 1등급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보아 2등급과 1등급은 공부에 대해 지금껏 상당한 내공을 쌓아온 아이들이다. 특히 1등급은 초등학교부터 관록이 붙은 아이들이 태반이다. 그들을 뚫고 오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중간고사 성적은 겨우 60점대에 턱걸이로 올랐고 6월 모의고사도 3등급이었다. 그러나 지난번 3월 모의고사와 달리 같은 3등급이래도 2등급과 1문제 차이라 희망이 보였다. 여름방학이 되었다. 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상황은 바뀐다. 녀석은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 9월 모의고사는 2등급에 턱걸이를 했다. 희망이 보였다. 녀석도 가능성을 인지했다. 그러나 녀석에겐 늘 말했다.


“목표는 3등급이다. 그 위는 신에게 맡긴다. 알겠어?”


 녀석이 시험에 대한 강박관념 없이 마음 놓고 시험 치라는 얘기였다. 결국 녀석은 수능에서  1등급을 받았다. 신이 도운 것이다.  

녀석은 결국 연세대에 최종 합격했다.



신영호 作/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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