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에게 우리 밥상 사진 꼭 보여주세요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린 잘 먹고 있으니....

by 꼼지맘

지난주에 친정에 다녀왔다. 도착한 다음날 아빠의 정기검진일이라 병원에 동행하기 위해서 병원일정 전날과 다음날까지 2박 3일의 일정으로 다녀왔다.


친정을 다녀온 뒤 엄마의 걱정이 늘었다. 아이들이 아침을 먹지 않자 엄마는 걱정이 많아졌다. 전화만 하면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느냐?, 얘들 고기는 얼마나 해주느냐?, 국은 아침마다 먹고 있느냐?, 반찬관리는 어떻게 하느냐? 네가 신경을 안 써서 얘들이 아침을 안 먹는 거 아니냐?... 안부전화를 했다가 폭우처럼 쏟아지는 질문들과 가이드라인들은 멈출지를 모른다. 결국 난 일하는 중이라거나 손님이 왔다는 말로 전화를 멈추기도 한다. 엄마는 가게를 하셔서 손님이 왔다고 하면 손님이 최고 우선이신 분이라 바로 전화를 끊으신다.


엄마는 핸드폰을 잘 보지도, 하지도 않으신다. 그래서 아빠에게 우리가 먹고 있는 밥상사진과 음식사진들을 보내며 잘 먹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엄마, 아빠 두 분이서 잘 먹고 잘 지내시면 된다고 했다. 아빠에게 꼭 엄마에게 사진을 보여드리라고 부탁의 전화를 했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 왜 고기반찬이 없는데?, 국은 안 먹어?"

"엄마, 국이랑 고기반찬은 매일 하는데, 따뜻하게 먹어야 하니깐 가스레인지 위에 있지 사진엔 안 보이는 거고, 지금 보낸 사진은 아침에 내가 나오기 전에 아이들 밥상 차려두고 나온 거야, 국이랑 고기는 데워서 먹으라고"

"응.. 국이랑 고기는 따뜻하게 먹어야 하긴 하지... 알았어"


엄마 이야기

엄마는 아빠가 아프시기 전까지는 가게를 하셨다. 엄마의 하루하루가 바빴기 때문에 멀리에서 사는 큰딸과 작은딸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빠가 병원치료를 받기 시작하시면서 엄마의 가게는 문을 닫았고, 아빠의 건강에 모든 집중을 하고 계신다. 처음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엄마의 정성 가득한 간병과 음식관리 덕분인지 아빠도 건강해지시고 일상도 잘 유지하고 계신다.


엄마는 아빠에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하시면서 24시간 아빠옆을 지키시느라 가게는 여전히 문을 닫고 있다. 엄마도 연세가 있으시니 놀이 겸 취미 삼아 단골손님만 받고 있던 가게라 가게문들 닫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엄마는 외향적이고 굉장히 활동적이시며 적극적이신 분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에너지가 넘치시는 분이다. 엄마는 좀 특별한 캐릭터이긴 하다. 좋은 점도 있지만, 불편한 부분들도 있다. 엄마의 그 많은 에너지가 누군가에게 집중이 된다면, 주파수가 맞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피로도는 한계치를 초과할지도 모른다.


내가 암을 만났을 때 아빠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겼다. 거이 비슷한 날이었다. 급히 대학병원으로 옮겨 검사를 하고, 치료일정을 잡아야 했다. 근처에 사는 남동생이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을 오가며 큰누나와 작은누나에게 진행사항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상황에 나의 암을 만난 것이다. 한 달 동안 동생들에게도 나의 암은 알리지 않고 있었다.


아빠의 건강문제에 급한 불을 끄고 어느 정도 가족들이 한시름 놓고 있을 때 동생들에게 나의 암소식을 전했다. 암 수술을 하고 난 뒤였다. 처음 1기로 예상했던 암기수는 조직검사결과 3기가 되었고, 8번의 항암치료를 해야 했다. 동생들과 항암치료를 하기 전에 부모님께 나의 암을 알리는 것에 대해 회의를 했다.

모든 가족들이 알리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아직 아빠의 건강은 안심할 때가 아니고, 급한불만 꺼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엄마와 아빠가 멀리 떨어져 있는 큰딸을 걱정하느라 아빠의 치료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 나도 엄마 아빠의 걱정을 감당하며 항암치료를 잘 해내 기가 힘들 거라는 결론이었다.


무엇보다 나도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집중해서 마음 편하게 치료에 전념할 수 있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우리는 나의 암을 부모님께 알리지 않기로 했다.


아빠 이야기

문제는 아빠의 수시로 하시는 화상전화였다. 남동생이 보호자로 아빠의 병원일정에 같이 동행했던 상황이라 남동생이 부모님과 있을 때 나에게 진행사항을 알려주는 전화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나의 항암치료약은 머리가 빠지지 않았다. 위절제수술로 음식을 먹지 못해 한동안 체중이 줄었고 말랐지만 아빠의 화상전화 때문에 정말 열심히 먹고, 운동을 했던 것 같다. 거의 1시간마다 소화가 잘되는 음식들을 먹으며 항암치료를 했던 것 같다.


아빠의 화상전화가 언제 걸려올지 모르니 최대한 컨디션을 잘 유지하고, 단정하고 예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나는 더 부지런히 생활할 수 있었다.


나중에라도 부모님이 큰딸의 암을 알게 되어 속상해하실지도 몰라 잘 찍지 않는 셀카사진을 매일 찍어 인스타에 남겼다. "이렇게 잘 지냈고, 많이 아프지 않았고, 잘 먹고, 재미있게 잘 놀고, 힘들지 않았다고" 사진으로 보여드리려 매일 카페에 가고 좋은 곳을 가고 , 예쁘게 차려입고 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아빠에게 화상전화가 왔다.

카페에서 일기를 쓰고 있을 때였다. 아빠의 전화를 받기 전에 화장을 고치고 립스틱을 발라 좀 더 화사하게 보이게 단장을 했다. 그리고 예뻐 보이는 조명이 있는 곳으로 옮겨 전화를 받았다.

아빠도 그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으시면서 많이 힘드셨고, 살이 많이 빠지셨다. 먹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제 조금 괜찮아졌다고 전화를 하셨다.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아빠도 몸이 회복되지 않으셨을 때는 화상전화를 하지 않으신 거다. 아빠도 멀리 있는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열심히 먹고, 걸으셨을 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8번의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일주일에 1~2번 이상은 가장 컨디션이 좋을 때 아빠에게 화상전화를 했다. 전화 잘하지 않는 큰딸이 자주 전화를 하니 웬일이냐고 하시면서 좋아하신다. 옆에서 엄마는 "우리 큰딸 더 예뻐졌는데.."라고 하신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길지 않게 통화를 하고 전화를 마친다.

항암치료 중에는 호흡이 가빠 긴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바로 알아채신다. 그래서 최대한 컨디션이 좋을 때만 화상통화를 해야 했다.


거짓말쟁이 큰딸

내가 5번째 항암치료를 마치고 휴식기에 아빠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우리 가족들이 갔었다. 코로나로 대학병원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빠를 입원 중인 병원 앞 식당에서 잠깐 식사만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빠는 남동생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힘겹게 걸으셨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거라고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큰딸에게 나이 들면 나잇살이 찌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다이어트한다고 살을 빼지도 말라고 하시면서 지금 딱 보기 좋으니 건강관리만 잘하라고 하신다. 나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불안 불안하게 이 상황을 지켜보며 남동생과 우리 가족들은 아빠가 사 주신다는 중국요리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나는 예쁜 암환자였다.

나는 아마도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 중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예쁘게 꽃단장을 하며 매일 셀카를 찍는 암환자였을 거다. 시작은 아빠의 화상전화 때문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의 루틴의 시작이었다. 8번의 항암치료를 하는 모든 날들이 예뻐야 했다. 나는 예쁜 큰딸이기 위해 최대한 컨디션을 잘 유지하려고 했고, 잘 먹으려고 노력했고, 체력을 유지하고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지금도 부모님은 나의 암소식을 모르신다.

항상 잘 지내고, 바쁜 큰딸이 요즘은 더 예뻐졌고, 요즘은 철이 들었는지 음식도 열심히 잘해 먹고 있다고만 알고 계신다. 암의 재발 전이는 암을 수술한 뒤 2년 동안 가장 많고, 5년 동안은 집중관리를 해야 한다.

내가 정말 온 정성을 다해 내 몸과 마음을 관리하려 노력하는 것은 부모님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매일 새벽운동 1시간씩 하고, 내 밥상을 정성껏 만들어 먹고, 일상을 잘 유지하며 나를 돌보는 것들은 더 이상 나의 건강으로 부모님께 걱정끼칠일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남편과 아이들, 동생들에게도 같은 마음이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나를 잘 돌보고 잘 지내는 것이다.


오늘도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 덕분에 나의 소중한 시간들을 정성껏 잘 보내고 있다. 내 몸과 마음을 돌보면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 달의 루틴기록, 나의 항암음식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