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화. 물가와의 전쟁
현재 스페인 카탈루냐에 위치한 작은 도시에 체류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외국노동자(외노자)로 일하면서 보고, 듣고, 만나고, 경험했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헉! 이번 달 수도요금이 OOO 유로가 나왔는데?"
"뭐? OOO 유로?"
"응. OOO 유로..... 우리 이사해서 입주하고 얼마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110 유로가 나왔네?"
"수도가 OOO 유로가 넘으면 전기하고 가스는 얼마가 나오는 거야? 말로만 듣던 스페인 공공요금이 장난 아니네...ㅠ.ㅠ"
"그러게, 더 아껴 써야겠어요......"
이곳 월세집에서 받아본 수도요금 고지서를 받아보고 처음에는 무슨 착오가 생긴 것으로 의심했다.
그래서 회사 동료한테 수도요금 고지서를 보여주면서 물어봤다.
"이번 달 수도요금인데 너무 많이 나온 것 같아. 한번 봐줄래? 이게 정상이야?"
"음...... 글세 우리 집하고 크게 다르지 않는데?"
"정말? 그럼 보통 이 정도 요금이 나온다고?"
"응. 조금 많이 나온 것 같기는 하지만 보통 이 정도 나온다고 봐야지?"
"와우. 한국하고는 많이 다르네......"
한국에서는 평범한 수도권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았다.
한국에서 살면서 특별하게 수도요금 물값을 걱정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내는 여느 집 주부처럼 빨래와 설거지를 본인이 하고 싶을 때 자유롭게 사용했다.
물을 물처럼 썼다.
그만큼 한국은 전 세계에서 수도요금이 저렴하다.
여름에는 전기 요금 때문에 에어컨을 맘대로 사용하지 못했지만 다른 가전제품을 사용할 때 특별하게 고민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뜨거운 물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전기주전자를 이용했고 요리를 할 때 인덕션을 맘껏 사용했었다.
겨울에 난방도 가능한 아껴 썼지만 한겨울에 실내에서 평상 실내복 차림이면 충분히 견딜만했다.
잠을 잘 때는 조금 두꺼운 이불만 덮으면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 수도, 전기, 가스는 모두 민영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전기는 통신사처럼 회사를 골라서 사용할 수 있다.
민영화와 복잡한 에너지 공급 시스템 영향으로 스페인 전기, 수도, 가스요금은 매우 비싸다.
스페인에 오는 많은 교환학생, 유학생, 워킹홀리데이 체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공공요금이다.
학생들의 경우 셰어하우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가스토(공공요금)'가 월세에 포함된 경우도 있지만 스페인에서 공공요금은 늘 주머니 경제에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전기, 가스 요금이 폭등하고 있다.
전쟁 이전에도 에너지 요금은 매일 사상 최고 요금을 경신하고 있었고 이곳 현지 사람들도 불만이 폭주하고 있었다.
작년 6월 스페인 정부에서는 전기요금 산정방식을 변경했다.
시간별로 전기요금 요율을 구분하였다.
밤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 가장 낮은 요금대, 오전 10시부터 낮 2시,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가장 높은 요금대, 나머지는 일반 요금대로 구분된다. (그림 참조).
우리 부부도 이곳에 와서 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가열 시간이 오래 필요한 요리는 주말에만 해 먹는다. (전기 오븐 사용은 포기했다.)
평일 점심 요리는 가급적 오전 10시 전, 저녁 요리는 오후 6시 전에 미리 만들어 둔다.
빨래도 가급적 주말에 몰아서 하고 평일에 해야 하는 경우에는 아침 6시부터 세탁기를 돌린다.
설거지도 가급적 몰아서 하고 물은 받아서 사용한다.
전에 살던 집에는 가스보일러가 있었다.
샤워할 때만 가스보일러를 사용했고 겨울에 난방을 거의 안 했다.
대신 두꺼운 잠옷, 수면양말, 목도리, 털신, 털모자를 집에서 쓰고 버텼다.
중간에 너무 추워서 인터넷에서 전기장판을 구입했다.
대신 전기장판은 밤 12시가 가까워졌을 때 잠깐 온기만 확인하고 새벽에 끄고 다시 잠에 들었다.
가끔은 온수 주머니를 껴안고 잤다.
스페인 주택은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 단열 효과가 매우 낮다.
그래서 가을부터 봄까지 건물 안으로 밀려오는 냉기는 한국하고는 많이 다르다.
이곳에 와서 평소 추위를 잘 안타는 아내가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너무 추워......"
새로 이사 온 집에는 전기보일러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전기보일러는 새벽에만 타이머를 설치해서 1시간만 작동하도록 세팅해두었다.
이렇게 가열되어 저장된 물로 하루 종일 나눠서 사용하고 있다.
샤워는 최대한, 가능한 짧게 한다.
월세집에 설치된 전구는 모두 LED로 바꿨다.
처음 이사 온 집에 설치된 전구는 처음 보는 전구가 많았다.
그래서 멋모르고 사용하다가 전구의 소비 전력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식탁등의 전구를 확인해보니 할로겐전구 2개가 들어가 있다.
전구 하나가 200W를 소비하고 있는....... 그래서 제1순위로 바꿨다.
안방에도 할로겐 100 W 전구가 2개 들어가 있었다.
화장실에는 10개가 넘는 재래 전구가 사용되고 있었다.
"아니 전기요금도 비싼 나라에서 무슨 할로겐전구를 사용하고 있지? 이해를 못 하겠어......"
이렇게 아껴서 사용하고 있는데도 청구되는 수도요금, 전기, 가스요금은 한국에서 자유롭게 쓰던 요금보다 늘 비싸다.
"아니 어떻게 여기 사람들은 이런 비싼 공공요금을 지불하며 살 수 있을까?"
"그러게, 인건비도 매우 낮다고 들었는데......"
스페인의 인건비는 상상 의외로 매우 낮다.
대졸 초봉 월급이 1,000~1,200 유로 정도 한다고 들었다.
최저 시급도 한국보다 낮다.
인건비가 낮은 이유는 남미, 중동, 아프리카에서 몰려오는 낮은 임금 노동자 영향으로 알고 있다.
수요 대비 공급이 많은 상황이라서 늘 일자리는 부족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넘쳐난다.
대신 마트 생필품 물가가 매우 저렴하다.
고기, 야채, 과일 등의 물가가 한국보다 많이 저렴하다.
그래서 낮은 임금이지만 마트에서 저렴한 식재료를 구입해서 버틸 수 있다.
(이곳 마트와 식재료 얘기는 다시 따로 모아서 글을 올리려고 한다.)
반면 식당 물가는 매우 비싸다.
동네 대중적인 식당을 가서 정식 메뉴를 먹으면 1인당 식사에 15~20 유로가 소요된다.
조금 인기가 있고 고급 식당에 가면 1인당 30~40유로 내외의 요금이 청구되는 경우도 많다.
덕분에 우리 부부도 외식은 거의 안 하고 있다.
대신 '마트놀이'를 열심히 하고 있다.
비싼 외식 물가 덕분에 대부분 근교 여행을 갈 땐 간단한 도시락을 챙겨가는 버릇이 생겼다.
커피도 보온병에 담아서 간다.
어쩔 수 없이 외식이 필요한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중식, 케밥, 맥도널드, 피자를 자주 이용한다.
이곳에 살면서 늘 그리운 것이 한국의 대중목욕탕이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다란 대중탕에 몸을 담그고 온 몸에 퍼지는 온기가 늘 그립다.
그래서 요즘도 한국에 가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따뜻한 순댓국 한 그릇 먹고 따뜻한 사우나에 몸을 담그는 상상을 늘 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 스페인 겨울은 짧다.
봄이 오고 꽃이 피고 나면 지난날의 추위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바로 강렬한 태양 덕분에 연신 시원함을 그리워하곤 한다.
- 10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