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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y Mar 31. 2022

스페인 작은 도시에 정착하기. Prologue

Prologue - 끝없는 기다림의 나라로

어릴 적 늘 동경하던 꿈이 있었다.

'해외에서 살아보면 얼마나 좋을까?'


해외에서의 삶...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고 그냥 일상이 지치고 답답할 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던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TV나 영화에서 바라보는 해외 생활은 늘 자유와 꿈이 가득할 것 같았고 달콤함은 보너스라고 상상했었다.


물론 한 때 해외에서 살아보고자 유학을 꿈꿨던 때가 있었다.

유학을 가기 위해서 어떤 것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유학 가서 실컷 혼자만의 외로움을 즐기면서 다른 문화를 경험하면 좋을 것 같다는 철부지 같은 생각을 했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꿈도, 열정도 이런저런 이유로 다 사라지고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한국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치열한 직장 생활을 겪어오면서 아쉬웠던 것이 젊은 날에 세계 배낭여행을 못해본 것이 늘 가슴속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젊은 학생이나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해주는 조언 중에 하나가 기회가 되면 해외로 배낭여행을 꼭 다녀오라는 취중진담이었다.


"결혼하고 사회에 자리를 잡으면 가고 싶어도 못 간다. 그러니까 아직 시간이 있을 때 무조건 다녀와. 돈은 나중 문제야."


해외 출장이 많았던 직장생활 덕분에 세계 여러 곳을 방문했었다.

미국, 유럽을 시작해서 남미 오지 산골 동네부터 방글라데시까지 많은 곳을 다녀봤다.

외국을 나갈 때마다 부딪치는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이 늘 나를 설레게 만들었고 웬만한 숙소와 음식도 잘 적응하는 튼튼한(?) 체력과 적응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해외 출장을 많이 경험할수록 새로운 문화 및 해외 생활에 대한 갈증을 더욱 증폭시켰으며, 어딘지 모르는 외국에서 1년 정도 살아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직장생활에 안정적인 자리를 잡고 있었고 반복적인 직장생활에 지쳐가고 있을 2019년 무렵 회사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눈에 띄었다.

해외 파견자를 모집하는 공지문이었다.


"어? 해외 파견?"


공지문 속에 포함된 '해외 파견'이라는 단어가 잠시 움츠리고 있었던 해외 생활에 대한 희망을 다시 꿈틀거리게 만들었고 이 공지문을 시작으로 스페인 시골 동네에서 파란만장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집에 퇴근해서 저녁을 먹으며 아내한테 슬쩍 회사 게시판에 올라온 글 얘기를 했다. 

그때 아내는 내가 툭 던진 이 한마디를 그냥 농담으로 생각한 것 같다. 


"해외 파견? 어딘데? 뭐 맘대로 해. 신청해서 손해 보는 것은 없잖아?"


아내도 평범한 한국 여성이 걸어온 것처럼 연애와 결혼, 출산과 육아, 직장생활과 전업주부 역할을 번갈아가면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아내로서 반복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해외 파견이라는 말이 내심 싫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그때는 내가 던진 말을 농담으로 생각했었고 설마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다.


해외 파견을 갈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나도 기대를 안 했다.

게시판에 올라온 내용을 보면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회사 내부 및 치열한 외부 경쟁이 예정되어 있었고 그 경쟁을 내가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자신이 없었다. 




6개월 동안 진행된 내부 및 외부 선발 과정은 다음 기회를 빌려서 얘기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우여곡절 끝에 파견 후보로 최종 선정이 되었고 2020년 6월 경에 해외 파견을 가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파견 국가는 유럽, 그것도 '스페인'이었다. 


스페인.

유럽 서편에 있는 나라

해를 사랑하는 뜨거운 정열의 나라.

2002년 월드컵 8강에서 우리나라와 치열한 경기 끝에 승부차기로 탈락한 나라.

와인과 하몽이 유명한 나라.

시에스타라고 하는 낮잠 문화가 있다는 나라.

이것이 내가 알고 있던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한 상식 전부였다.


스페인 국기


아내는 해외 파견이 결정되자마자 스페인어 학원을 등록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나도 하던 일을 이것저것 정리하고 보랏빛 청사진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어떤 집에 살까?

빠에야와 하몽은 어떤 맛일까?

정열의 나라라고 하는데 탱고 춤을 추며 매일 밤마다 파티를 즐기겠지?


그리고 매일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스페인에서의 생활을 그려보았다.

마당이 있는 작은 주택에 벽난로가 있고 저녁 식사 후 느긋하게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모습을 꿈꿨다. 




그렇게 우리의 스페인 출발과 생활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삶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낭만 있고 달콤할 것이라고 상상했었다.

그러나 스페인에 도착해서 1년이 지난 지금.

지나간 1년 동안 경험했던 일들을 천천히 돌이켜보면 내가 상상했던 것과 현실은 너무 큰 차이가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 잠깐 봐왔던 모습과 살아가면서 천천히 지켜본 모습은 너무 큰 거리를 두고 있었다.


"여행을 다니기에는 너무 좋은 나라. 그러나 외국인이 살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나라."


앞으로 이곳에서 정착하면서 외국 노동자(외노자)로서 겪었던 내용을 주제로 내가 그동안 보고, 듣고, 만나고, 경험했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TV 액정으로 전해지는 드라마나 영화같이 달콤하지 않은 매일 하루하루 실제 살아가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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