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화. 해외에서 이사하기
현재 스페인 카탈루냐에 위치한 작은 도시에 체류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외국노동자(외노자)로 일하면서 보고, 듣고, 만나고, 경험했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어릴 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사를 많이 다녔다.
결혼을 해서도 전셋집을 찾아 이사를 많이 다녔다.
이사는 새로운 삶의 거처를 옮기는 일이다.
그래서 삶에 큰 비중으로, 오랜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그동안 태어나서 몇 번 이사를 다녔을까?
스페인에 오기 위해 한국에서만 2번 이사를 했다.
스페인에 와서 임시숙소를 거쳐 정식 월세집에 살게 되면서 이사는 당분간 안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살던 집의 끊임없는 하자와 소음 문제로 결국 이사를 또 해야 했다.
이사할 집을 찾기 위해 'Idealisata(이데알리스타)'와 'Fotocasa(포또까사)' 사이트를 열심히 뒤졌다.
아내는 하루 종일 집 정보를 찾아서 자료를 공유했다.
나는 나 대로 집 정보를 찾아서 아내와 공유했다.
우리가 이번에 새로 집을 찾으면서 가장 우선 시 했던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지금 살고 있는 집과 월세가 비슷하면 좋겠다.
2. 가구(침대, 소파)와 가전제품(냉장고, 세탁기)이 있는 집이면 좋겠다.
3.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
4. 기존 집보다 해가 더 많이 들어오는 동남향 또는 남서향이면 좋겠다.
5. 주차가 가능한 집이면 좋겠다. (차량 구매를 위해서......)
6. 가스보일러가 있는 집이면 좋겠다. (전기요금이 너무 비싸다.)
그러나 늘 희망과 현실은 다르다.
현재 살고 있는 집과 월세가 비슷하면서 위 조건을 충족한 집은 없었다.
하나가 만족하면 하나가 부족했다.
가구와 가전제품이 있는 집을 찾으려고 했더니 선택 폭이 너무 좁았다.
그래서 가구와 가전제품이 없는 집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뭐, 안되면 여기서 다 사고 한국으로 가져갑시다."
"한국으로 가져간다고? 어떻게?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음....... 그러면 뭐 여기서 팔고 가지 뭐......"
아내한테 호기롭게 얘기했다.
그러나 우리가 찾는 조건에 맞는 집은 없었다.
매일 밤마다 잠 못 이루는 고민은 늘어갔다.
더욱이 침대에 누우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또한 천장 누수로 인한 곰팡이 냄새가 점점 강해져서 폐와 머리까지 스멀스멀 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문제 많은 집에서 나가고 싶었다.
결국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결단이 필요했다.
월세 기준을 조금 높이기로 했다.
"주차요금을 추가로 내는 셈 치고 월세를 조금 더 높여도 되지 않을까?"
"월세를 높인다고? 얼마나? 부담스럽지 않아?"
"언제 우리가 이곳에서 얼마나 살아보겠어? 맘고생하지 말고 조금 월세를 높여 봅시다."
"당신 좋을 대로 해요......"
3개의 후보가 선정되었다.
회사 동료 도움으로 3곳의 집을 차례로 방문했다.
첫 번째 집은 시내 외각에 위치한 집이었다.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라 깨끗했고 외각이라 길거리 주차가 가능했다.
무엇보다 회사하고 가까웠고 쓸 일은 없겠지만 단지 내에 야외 수영장도 있었다.
그러나 기존 집보다 작았고 가구와 가전제품이 없었다.
반면 월세는 기존 집보다 조금 높았다.
그리고 외각에 있다 보니 열차나 시외버스를 이용하려면 다시 또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만 했다.
두 번째 집은 시내 중심부에 있었다.
집은 비교적 깨끗했고 넓이는 기존 집보다 조금 컸다.
주차도 가능했다.
가구와 가전도 있었다.
단 월세가 많이 비쌌다.
세 번째 집도 시내 중심부와 가까웠다.
집은 운동장만큼 커서 숨바꼭질을 해도 못 찾을 것 같았다.
주차도 가능했다.
그런데 집이 오래되어서 많이 낡았다.
그리고 가구와 가전이 없었다.
대신 월세는 기존 집과 비슷했다.
여기서부터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머릿속에서는 복잡한 연산이 시작되고 있었다.
"한 달 월세에 주차장 사용료, 가구와 가전을 새로 산다면?...... 전체 금액이...... "
직장 동료는 월세를 고려해서 세 번째 집을 내심 추천했지만 고민 끝에 두 번째 집을 선택했다.
월세가 조금 비쌌지만 집 구조가 맘에 들었다.
무엇보다 아내가 맘에 들어했다.
결국 주차료를 추가로 지급한다는 마음으로 계약을 서둘렀다.
이사를 결정하고 계약금을 납부하고 이사를 기다리던 토요일 저녁 문자가 왔다.
나 대신 부동산 계약을 늘 도와주던 직장 동료한테 연락이 왔다.
"오늘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는데 000 유로에 월세와 주차장 사용료를 다 포함하기로 했어."
"뭐? 000 유로?"
"응. 000 유로에 월세하고 주차장 사용료 포함"
"이상한데? 처음 말했던 금액보다 금액이 깎였는데? 무슨 일이지?"
난 이곳 토박이 출신인 직장 동료가 나를 위해 어떤 도움을 준 것으로 생각했다.
"혹시, 집주인이 직장동료 하고 아는 사람인가?"
"정말?"
"그런 것 같아...... 동네 토박이다 보니 집주인하고 아는 사이라서 월세를 깎아 달라고 부탁한 것 같아"
"설마....."
"혹시 그렇다면 너무 고마운데?"
나중에 직장 동료한테 물어봤다.
"아니 왜 월세가 깎였어?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거야? 일단 모르겠지만 도와줘서 너무 고마워"
"글세? 나도 잘 모르겠어. 뭔가 복잡한데. 부동산 법하고 관련된 일이야"
"부동산 법? 아니 어떻게?"
"나도 잘 몰라. 하여튼 잘 된 일이잖아. 월세가 기존 집하고 같은데 주차장까지 포함이니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월세를 과도하게 받지 못하도록 스페인 부동산 법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현재 집주인이 월세를 어느 수준 이상으로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기존 집과 동일한 월세 수준으로 새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것도 주차장 사용료를 포함해서......
"오호, 정말 좋은데? 횡재했는데? ㅎㅎㅎ"
스페인에도 포장이사 서비스는 있다.
다만 비용이 비싸서 대부분 이곳 사람들은 포장은 직접 하고 배달 서비스만 이용한다.
그래서 우리도 배달 서비스만 이용하기로 했다.
회사 동료 도움으로 이삿짐 운송업체를 알아보고 저렴한 조건으로 계약했다.
"이사비용이 내가 생각했던 금액보다 너무 저렴한데?"
"그래? 3시간 기본 금액으로 알아본 거야. 넌 짐이 없으니까 3시간이면 충분할 거야. 걱정하지 마."
"알았어...... 3시간? 조금 불안하긴 한데...... 뭐 어떻게 되겠지. 고마워!"
생각보다 너무 적은 비용 조건이라서 많이 놀랐지만 나중에 황당한 이유로 결국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ㅠ.ㅠ
계약금을 보내고 이사 날자가 결정되었다.
우리는 그날부터 짐을 포장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기본적인 박스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했다.
그러나 박스가 부족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추가로 빈 박스 구하기에 나섰다.
자주 가던 중국 마켓 사장님한테 잘 얘기해서 박스 3개를 얻어왔다.
길 건너 속옷 가게 앞에 버려진 박스를 들고 왔다.
회사에서 남아돌던 박스를 들고 왔다.
그날부터 회사 출퇴근을 하면서 길거리에 버려진 쓸만한 박스가 있는지 매의 눈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살다 보니 외국에서 길거리에 버려진 박스를 구하러 돌아다니다니...... 별 경험을 다 해본다......"
준비된 박스로 포장을 시작했다.
나는 지난번 이사 후 앓아누웠던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일주일 휴가를 냈다.
이사는 화요일에 하기로 했고 일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짐을 포장했다.
이사 당일 약속대로 아침 8시에 인부 2명이 짐을 옮기러 왔다.
당초 3시간 안에 이사가 완료되는 계약 조건이었다.
추가로 시간이 초과되면 비용이 일정 금액대로 증가한다.
"2명만 왔는데?"
"그러게 2명밖에 안 왔네? 어떻게 2명이서 짐을 나르지? 그러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이사를 하면 시간이 아닌 정해진 계약 금액대로 일을 하기 때문에 최대한 서둘러 포장을 하고 운송을 한다.
그런데 여기는 시간제로 금액이 책정되기 때문에 느긋하게 일을 한다.
시간이 늘어날수록 비용은 계속 올라간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급했다.
"짐을 너무 천천히 나르는 거 아닌가?"
"1명은 짐을 나르고, 나머지 1명은 짐을 쌓고 있으니 늦어질 수밖에......"
"그러게...... 시간이 초과될 것 같아...... 우리가 같이 나릅시다."
인부 대신 우리 부부가 열심히 날랐고 도왔다.
그렇게 서둘러했는데도 예상보다 1.5시간이 추가되었는데 인부들이 짐이 너무 많다고 계약금보다 2배에 가까운 금액을 요구했다.
내 앞에서 할리우드 액션을 하듯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땀을 연신 닦는 흉내를 냈다.
말도 안 통하고 찾아놓은 현찰이 빠듯해서 계좌이체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현금만 받겠다고 우겼다.
스페인도 세금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현찰을 선호한다.
계좌이체도 근거가 남아서 무조건 현찰을 선호한다.
결국 가지고 있던 현찰을 탈탈 털어서 이사비용을 지불했다.
"우리 딴에는 고생한다고 중간에 간식과 물도 제공하고 열심히 도왔는데......"
이사는 끝났다.
새로 이사한 집은 생각보다 좋았다.
가스보일러가 아닌 점을 빼고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전기보일러라서 비싼 전기요금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처음에 이삿짐을 나르고 조금 당황했었다.
새로 온 집에 쓸모없는 짐이 너무 많았다.
낡은 침구류, 낡아서 쓸모없는 가구와 소모품, 이름 모를 각종 병과 그릇들......
계약 당시 입주 전에 모든 것을 다 청소해주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모든 짐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전에 살던 사람이 빈병 수집이 취미였나 봐?"
"왜?"
"주방에 빈병 하고 이름 모를 양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이불 하고 침구류가 너무 더러운데? 옷장 안에도 이상한 천조각들이 너무 많아. 어떻게 하지?"
"글세? 한 곳에 잘 모아둘까?"
"이걸 보관하려면 공간을 너무 차지하는데? 더러워서 다시 빨아서 보관하기도 너무 힘들고......"
"내가 다시 한번 확인해 볼게...."
"방 조명이 초록색이야!"
"초록색? 희한한 취향이네......"
"방 한가운데 낡은 원형 테이블이 있는데? 어떻게 하지?"
"그러게 방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어서 쓸모가 없는데?"
"우리한테 필요 없는 낡은 짐이 너무 많아. 집주인한테 물어봐. 원래 청소를 해주기로 했잖아?"
"집주인한테 물어봤는데 다 버려도 된다고 하는데?"
"정말?"
집주인은 사용할 일이 없으면 기존 짐을 다 버려도 된다고 했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몇 번을 확인했는데 다 버려도 좋다는 집주인 승낙을 받았다.
그래서 과감하게 더럽고 지저분한 침구류, 각종 낡고 쓸모없는 가구와 짐들을 다 버렸다.
한국에서부터 시작한 버리기는 이곳에 와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짜증 나! 우리가 스페인 낡은 집을 입주 청소해주는 기분인데?"
며칠 간의 대청소 끝에 아침에 여유 있게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생겼다.
기존 집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집이 동향이라서 아침에 햇빛이 들어오는 점이다.
"오래간만에 집으로 아침에 해가 들어오네...... 1년 만에......"
"햇빛을 보니 너무 좋네......"
"처음부터 이런 집에 살았어야 했던 건데......"
새로 이사한 집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집 구조도 마음에 들었다.
동네도 조용하고 무엇보다 집 근처에 맛있고 친절한 단골 빵집이 생겼다.
단, 차만 빼고.
아직도 차가 없다.
비싼 주차장 사용료를 매달 내고 있다.
대신 텅 빈 주차장에 한국에서 가져온 자전거가 자리 잡고 있다.
"차는 언제 생길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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