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화. 유럽에서 차 없이 살아가는 방법
현재 나는 차가 없다.
차 없이 1년을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차 없이 살 생각은 안 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 차와 관련된 많은 정보를 알아봤다.
그러나 비용적인 부분도 있었고 이곳에 와보니 차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차를 주차할 공간이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대부분 집은 오래된 건물이 많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집이 대부분인데 집에 주차공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최근에 지어진 건물에는 지하나 1층에 주차공간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집들은 월세 가격도 비싸고 구하기도 어렵다.
참고로 스페인에서 월세를 구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Idealista'나 'Fotocasa' 사이트에서 주차장 옵션을 포함하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확 줄어든다.
오래된 도시다 보니 시내 중심부는 도로 폭도 좁고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영향으로 시내 중심가에는 주차공간이 많이 부족하다.
시내 중심부에는 늘 유료주차장만 설치되어 있고 중심부에서 조금 벗어난 외각에도 주차 전쟁이라고 할 만큼 좁은 공간에 차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다.
차가 작을수록 좁은 길가 공간에 주차가 유리하기 때문에 유럽 사람들이 작은 차를 선호하는 것 같다.
주차료도 많이 비싸다.
참고로 내가 살고 있는 시골 동네 유료 주차장의 경우 시간당 2 유로 정도 금액을 받는다.
시골 동네인 점을 고려하면 많이 비싸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보다 규모가 큰 바르셀로나는 서울 강남보다 주차료가 비싸다.
그래서 바르셀로나는 현지인들도 차 가져가는 것을 꺼려한다.
바르셀로나 인구는 300만 정도인데 인구 규모로 따지면 유럽에서도 큰 도시에 속한다.
반면에 도시 크기가 상대적으로 매우 작아서 인구밀도가 높다.
대신 편리한 대중교통과 작은 도시 규모 때문에 굳이 차가 없어도 관광을 다니거나 쇼핑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다.
그래서 맘만 먹으면 도시의 주요 장소를 걸어서 구경할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도 외각에서 반대편 외각까지 도보로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크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곳 사람들도 대부분 걸어 다니는 것이 매우 익숙하고 걸음도 무척 빠르다.
주차는 대부분 도로 주차장을 이용하고 있다.
파란색 구역은 유료 주차구역이다.
흰색 구역은 무료 주차구역이고 이륜차는 따로 구역이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노란색 구역이 있는데 차가 지나가는 입구에 표기되어 있고 이곳에 주차를 했다가는 큰코다친다.
아무런 표기가 없는 곳은 불법 주차 구역이다.
외각에서는 상황을 잘 파악하고 주차를 해야 한다.
이곳에 잘못 주차하면 100 유로의 불법주차 과태료를 물어야 할 수도 있다.
내가 스페인에 와서 가장 감동받고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교통문화다.
우선 철저하게 보행자 중심의 교통문화를 가지고 있다.
신호가 있는 건널목에서 신호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은 기본이고 신호가 없는 건널목에서도 보행자가 무조건 우선이다.
만약 지나가는 보행자를 못 보고 지나가는 경우 어떤 욕을 먹을지 장담 못 한다.
경찰이라도 있으면 당연히 벌금 딱지를 받을 테지만 심한 경우는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행자가 손으로 두드리며 고함을 지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운전자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연신 미안하다는 표정과 손짓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만큼 길에서 보행자는 최우선으로 생각된다.
그다음 우선순위가 자전거다.
자전거가 도로에 있는 경우 모든 차는 서행과 동시에 일정 간격을 두고 지나가야 한다.
만약 길이 좁아서 간격이 확보되지 않은 경우 절대 추월하는 경우가 없다.
그래서 심할 경우 자전거 뒤를 여러 대의 자동차가 줄지어 뒤 따라가는 경우도 종종 봤다.
대중교통 시스템도 잘 되어 있다.
각 도시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버스(한국으로 치면 마을버스와 비슷)가 있고 시 외곽을 거미줄처럼 연결된 버스 노선이 많다.
그리고 전철과 기차가 잘 구비되어 있어서 웬만한 도시는 대중교통으로 다 이동 가능하다.
땅덩어리도 커서 장거리 이동에는 비행기도 많이 이용하고 있다.
버스를 이용하려면 버스카드가 필요하다.
MOO에는 버스 전용 버스카드가 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주에서 이용 가능한 버스카드가 따로 있는데 거리에 따라 1 존부터 6 존까지 구분되어 있고 가격이 다르다.
장거리 버스는 버스 탑승 시 현금 결제나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운행되는 버스는 저상버스로 되어 있어서 타고 내리기에 무척 편리하다.
그리고 대부분 하이브리드 방식의 친환경 버스가 도입되어 있어서 소음도 적고 매연도 적다.
무엇보다도 운전기사분들이 매우 친절하다.
승객이 타고 내릴 때 절대 급출발, 급제동하는 경우가 없다.
하지만 버스 운행 중에 버스 정류장에서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출발을 안 하고 5분 정도 수다 떠는 것은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승객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서 불평하거나 불만을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자연스럽게 주차할 공간도 없고 대중교통도 편리하다 보니 차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덕분에 매일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을 걸어서 했다.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도보로 출퇴근을 했는데 집에서 직장까지 4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라서 걸을만했다.
그리고 처음 구경하는 외국 골목길과 거리 모습을 구경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도시의 구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이곳 사람들도 웬만한 거리는 많이 걸어 다닌다.
그리고 걸음 속도가 무척 빠르다.
가끔 길을 가다 보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축지법을 쓰는 것 같은 걸음 속도를 보인다.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도 너무 잘 걸어 다니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걷는 것이 몸에 배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도시에 이사를 오면 동네 구조를 빨리 파악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슈퍼는 어디에 있는지, 약국은 어디에 있는지, 철물점이나 공구 가게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둬야 매우 편리하다.
도보 출퇴근 덕분에 이런 정보들을 빨리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곳 현지 사람들보다 동네 골목길, 가게들의 위치와 정보를 더 잘 알고 있을 때가 많다.
도보 출퇴근의 또 하나 장점은 도시 행사 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간 별로 시작하는 상가 세일 정보와 신상품 정보를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었다.
동네에서 개최되는 행사나 야시장 정보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1년간 이곳에 살면서 도보의 즐거움에 푹 빠졌다.
거리를 다니면서 새로운 가게와 골목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곳 사람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 바뀌는 하늘을 보면서 변화하는 스페인의 사계절을 맘껏 경험할 수 있었다.
도로는 깔끔했고 중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한산했다.
코로나 시기라 늘 벗지 못하던 마스크도 벗고 다닐 수 있었고 아침마다 들리는 새소리는 귀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발생하는 냄새를 즐길 수 있었는데 아침마다 동네 빵집에서 빵 굽는 냄새를 즐길 수 있었고 외각 길에서 나는 풀 냄새를 즐길 수 있었다.
반면에 도보 생활을 하다 보니 가장 먼저 낡은 것이 신발과 양말이었다.
한국에서 애용하던 신발이 이곳에서 매일 6개월 정도 사용하니 바닥 창이 다 닳아버렸고 양말도 늘 바닥에 구멍이 생겨서 어떤 날은 발에 물집이 잡히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은 가방에 비상용 양말을 하나 챙겨 다닌다.
그리고 도보 출퇴근 덕분에 체중이 많이 감소했다.
물론 한국에서 자주 즐기던 회식 술자리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매일 8 km 정도의 거리를 도보로 걷다 보니 체중도 감소하고 건강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주말에도 가능하면 동네 외각을 한 바퀴 돌아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다만 그렇게 1년을 살다 보니 차가 없는 생활의 단조로움과 불편함도 공존했다.
직장 동료들이 주변에 갈 수 있는 좋은 장소를 종종 추천해줬는데 차 없이는 갈 수 없는 곳이 많았다.
그리고 가끔 집에서 필요한 무겁거나 부피가 큰 물건을 들고 올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쉬운 것 중 하나가 스페인은 와인 강국답게 동네 주변에도 좋은 와이너리가 많았다.
스페인에 오기 전부터 주변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와이너리 투어를 해보고 싶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이런 와이너리는 시 외각 농촌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고 도보로는 접근하기 힘든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대중교통으로는 방문할 수 없었다.
우연히 이곳에서 알게 된 한국 지인들도 차가 있어야 한다고 강하게 조언을 했다.
주변에 갈 수 있는 좋은 곳이 너무 많은데 차 없이는 방문할 수 없다며 차가 생기면 삶의 질이 바뀔 것이라고 매번 얘기했다.
그리고 아내가 차를 원했다.
1년 정도 지나니 늘 작은 도시에만 갇혀 있다는 상황을 조금 답답해했다.
그런 와중에 살고 있던 집에 문제가 생겼다.
결국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왕 이사를 하는 김에 주차가 가능한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주차가 가능한 집을 우연히 구했다.
그러나 차를 마련하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도 차는 없다.
차를 구해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다만 차를 구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한국에서도 차 없이 다니는 것을 선호했다.
지난 1년간 차 없이도 잘 버텨왔고 덕분에 많은 좋은 것을 얻었다.
걸으면서 속상함을 달래기도 했고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차가 언제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도 열심히 튼튼한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고 있다.
스페인은 순례자 길이 유명하다.
제일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자 길부터 다양한 코스와 걷기 행사가 있다.
마침 이번 주에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개최되는 순례자 길 체험 행사가 있어서 참가하기로 했다.
순례자 길을 걸으며 그동안 걸어왔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새로운 방향을 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 07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