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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y Apr 01. 2022

스페인 작은 도시에 정착하기. 05화

05화. 코로나 시국 외국 직장 점심 문화

스페인에 오기 전에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점심 문화였다.

여러 글에서 스페인은 점심시간이 길고 시에스타 낮잠 문화를 즐긴다라고 적혀있어서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궁금했다.  


"점심을 느긋하게 2시간이나 먹고 시에스타를 즐기면 일은 언제 할까?"


그러나 이런 의문은 출근 첫날 무참히 깨져버렸다.

출근한 직장의 첫 OT 때 받은 자료에는 공식적인 점심시간은 오후 1시 30분부터 4시 사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 자료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우, 이곳은 정말 듣던 대로 점심시간이 무척 길구나?"


그러나 실제 점심시간은 OT 자료와도 달랐고 내 예상과 달리 무척 짧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30분 이내에 점심을 후딱 해치우고 다시 자리로 복귀하기 바빴다.

그리고 근무시간에 집중해서 일을 하고 퇴근을 서둘렀다. 


내가 이곳에서 출근하는 직장은 주 5일, 40시간을 근무하는 것이 의무 조건이다.

주 5일 근무라서 이론적으로 하루 8시간을 근무해야 하지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20분을 추가로 근무하고 금요일에는 7시간을 근무하도록 규정이 되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 직원들은 회사가 위치한 도시가 아닌 멀리 대도시에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을 고려하면 러시아워를 피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근무시간에 집중적으로 일하고 퇴근을 서두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OT 때 받은 자료처럼 점심시간이 규정되어 있지만 대부분 직원들은 본인 스케줄에 따라 점심을 먹었다.

점심시간 때 회의가 있거나 일정이 있는 사람은 일찍 먹기도 하고 때로는 늦게 먹는 사람도 많았다. 




내가 이곳에 와서 가장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것은 밥을 먹는 장소였다.


첫 출근 날 간단하게 도시락을 챙겨갔다.

한국 점심시간인 12시를 한참 넘겨 오후 1시가 넘었는데 아무도 밥을 먹으러 가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1시 30분을 넘어 2시가 가까워지니 옆 자리 사무실 직원이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면서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그래서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어? 오늘은 내가 첫 출근한 날이라서 밖에 나가서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먹자는 얘긴가? 한국에서 신입 직원이 들어오면 하는 환영파티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도시락을 괜히 가져왔는데?"


그러나 착각이었다. 

직장 동료가 얘기한 밖은 건물 앞 주차장이었다. 


"건물 앞 주차장? 거기서 밥을 먹자고? 이상하다 밥을 먹는 장소를 못 봤는데?"


조금 당황도 하고 놀랐지만 옆 자리 동료를 따라 나간 건물 앞 주차장엔 이미 많은 젊은 친구들이 주차장 바닥에 빙 둘러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사람들은 원형 형태로 크게 둘러앉아 서로 마주 보면서 밥을 먹고 있는데 사람이 늘어날 때마다 조금씩 자리를 이동해서 원의 크기가 점점 커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건물 안에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영향으로 좁은 식당 공간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 제한 규정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건물 밖 주차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앉아서 먹다 보니 감염에 대한 걱정을 조금 줄일 수 있었고 자유롭게 얘기도 할 수 있어서 직원들 스스로 생각해낸 일석이조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맑은 하늘과 강한 태양 아래서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그래서 나도 어쩔 수 없이 건물 앞 주차장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밥을 먹었다.


"정말 살면서 별 경험을 다 해보네...... ㅠ.ㅠ"


오늘 점심메뉴로 아내가 만들어준 볶음밥을 주차장 바닥에 앉아서 먹고 있다. 




출근한 직장에 동양인이라고는 나 혼자였다.

첫 출근한 날 도시락 가방을 들고 나타난 나를 보고 다들 신기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처음에 간단하게 이름과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관심을 갖는 듯했지만 이내 점심을 먹으면서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다들 신나게 얘기하고 웃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조용히 챙겨간 도시락에 집중할 수 있었고 오히려 주변 동료들을 관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가져간 도시락을 먹으면서 다른 직원들이 가져온 점심 메뉴를 보니 한국에서 보던 메뉴와는 너무 달랐다. 

스페인 샌드위치라고 불리는 보까디요(bocadillo)부터 시작해서 이름 모를 다양한 종류의 파스타, 피자, 콩요리, 고기 요리, 이름 모를 샐러드까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섞여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점심 메뉴도 다양했다.


메뉴와 더불어 직원들의 복장도 매우 다양했다. 

대부분의 남자 직원들은 청바지에 면티로 통일(?)된 심플한 복장이었다. 

반면에 여직원들의 복장은 정말 다양했고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청바지에 티를 포함해서 레깅스와 짧은 민소매 티까지 다양하고 자유로운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서로의 외모와 복장에 신경 쓰지 않은 눈치였다.


강렬한 태양이 떠 있는 날 건물 앞 넓은 주차장에 앉아 있으니 눈을 못 뜰 정도로 직사광선이 내리쬐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어떤 친구는 영리하게 선글라스를 준비한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햇빛 아래서 꿋꿋하게 점심을 먹으면서 대화에 열중하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정열의 나라 사람답게 해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에 있던 직장에는 물론 구내식당이 있었다.

제공되는 음식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바쁜 시간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윤기가 있지는 않지만 늘 따뜻한 쌀밥이 있었고 매일 다양한 따뜻한 국이 제공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반찬과 늘 빠지지 않던 매콤한 김치가 있었다.


그러나 이곳 구내식당에는 텅 빈 공간에 테이블 몇 개와 자판기, 그리고 싱크대가 전부였다.

코로나 때문에 유일한 식당 공간에 10명 정도 인원만 앉을 수 있도록 자리배치가 제한되면서 점심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자리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직원들이 대안으로 찾아낸 방법이 야외 주차장 바닥이었다.


나중에 파악한 사실이지만 젊은 친구들은 대부분 야외 주차장에서 점심 먹는 것을 선호했다.

반면에 나이가 있거나 간부급 직원들은 실내 식당을 선호했다.

이곳 친구들도 한국처럼 팀장이나 간부하고 같이 밥 먹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식당에는 자판기와 냉장고가 구비되어 있다.


직원들이 식사할 수 있는 공간


내가 준비한 점심 메뉴로 대부분 간편한 샌드위치나 샐러드가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볶음밥 등의 한식을 준비하려고 했으나 아침마다 준비하는데 번거롭기도 하고 냄새 걱정도 한몫을 했다.

그래서 늘 국물 없는 차가운 점심을 먹다 보니 한국에서 먹던 구내식당의 따뜻한 식사 한 끼가 정겹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식당에 설치되어 있는 자판기




스페인의 식사 시간은 한국과 완전히 달랐다. 

그래서 식사 시간 적응이 처음에는 어려웠다. 

한국에서는 보통 12시 전후로 점심을 먹지만 이곳에서는 대부분 2시 전후로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6시 전후로 저녁을 먹지만 이곳에서는 대부분 8시 이후에 저녁을 먹는다.


처음에는 이곳 방식대로 식사 시간을 맞춰 보려고 했지만 8시 이후에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한국에서 먹던 습관대로 점심과 저녁을 12시 및 6시 전후로 해결하기로 했다.

물론 앞에서도 말했듯이 직장에서는 식사시간이 자유로워서 늘 식당에 가보면 누군가가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스페인은 하루 5끼를 먹는다는 말이 있다.

아침을 출근 전에 간단히 해결하고 회사에서 10~11시 사이에 본격적인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2시 전후에 점심, 5시 전후에 간식, 마지막으로 8시 이후에 저녁을 먹는다. 

식사를 5번 하니까 많이 먹을 것 같은데 실제 먹는 것을 보면 한 끼당 먹는 양이 무척 적었다. 


처음 출근해서는 이곳 사람들하고 점심을 먹다 보니 2시에 점심을 먹고 퇴근해서 6~7시에 저녁을 먹는 경우가 많았다.

점심시간이 조금 늦어진 날에는 3시에 점심을 먹고 6시에 저녁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려서 저녁 시간이 조금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가 진행되고 사무실 직원들이 출근하는 날이 제각각 달랐다. 

그래서 어떤 날은 주차장에서 젊은 친구들하고 같이 먹는 날도 있었지만 사무실 직원이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혼밥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결국 자연스럽게 점심 식사 시간이 조금 당겨지더니 12시 30분경에  혼밥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국에서도 혼밥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혼밥을 하다 보니 밥을 먹는 재미가 없어졌다. 

하루는 금요일에 사무실에 혼자만 출근했고 어쩌다 보니 점심시간을 놓쳐버렸다.

그래서 건물 앞 주차장 바닥에 혼자 앉아서 밥을 먹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이 먹고 희한한 경험을 많이 해보네...... ㅠ.ㅠ"


금요일 오후 사무실 직원이 출근 안 해서 건물 앞 주차장 바닥에서 혼밥을 했다. 


2시간의 점심 문화와 시에스타가 있는 스페인 점심 문화를 상상했었는데 직접 와보니 현실은 많이 달랐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늘 고민이 생긴다.


"오늘은 몇 시에 먹을까?"

"오늘은 어디서 먹을까?"

"오늘은 누구랑 먹을까?"


이럴 때마다 한국에서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려 뜨끈한 밥과 국물을 먹던 점심시간이 그리워진다.


- 06화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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