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화. 이사하고 이사하고, 다시 또 이사하고
스페인으로 출국하기 전에 한국에 있는 집을 정리해야 했다.
우선 스페인으로 보낼 짐을 선별해야 하는 고민이 필요했다.
컨테이너로 짐을 보내야 하고 선박 산업의 장기적인 침체로 해외 운송을 위한 선박이 부족하다 보니 물류비용이 대폭 상승했고 결과적으로 이사 비용이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그래서 스페인으로 보내야 할 짐을 최대한 줄여야만 했다.
우선 가구는 작은 싱글 침대 1개만 스페인으로 가져가고 나머지 가구는 다 포기했다.
스페인 현지에 알아본 집에 더블 침대 1개가 있는데 나중에 혹시나 손님이 오면 불편할 것 같은 생각에 가져가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가전제품도 한국에서 쓰던 무선 청소기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다 한국에 두고 가기로 했다.
스페인에서는 한국하고 전압은 같지만 헤르츠가 다르기 때문에 오작동이나 고장이 쉽게 난다는 얘기를 들어서 가전제품을 다 한국에 두고 가기로 했다.
특히, TV는 한국하고 영상신호 전송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스페인에 가져가도 쓸모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스페인 현지에서 필요할 것 같은 의류, 식기 등 최소한의 짐을 챙겼다.
마지막으로 해외에 있으면 한국 책이 많이 그립고 구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들어서 중고 서점에 가서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모아서 100 권 정도 짐에 포함시켰다.
해외 이사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많이 걱정했지만 경험 많은 한국 운송사 직원들의 숙련된 일처리 때문에 큰 무리 없이 이삿짐 포장이 마무리되었다.
다행히 처음 예상했던 컨테이너 용량에 딱 맞게 짐이 포장되어 별도의 추가 금액 없이 이사 포장이 완료되었다.
컨테이너에 이삿짐이 다 실어지면 최종적으로 짐이 실어진 것을 확인하고 소유주와 직원이 같이 보는 자리에서 열쇠로 컨테이너 문을 잠그고 봉인 처리를 한다.
이 봉인은 스페인에 도착해서 풀 수 있다고 한다.
보통 한국에서 배로 이삿짐을 보내면 유럽에는 2~3개월 뒤에 도착한다고 한다.
그래서 2월에 서둘러 짐을 보냈다.
자 이제 한국에 남아 있는 짐을 다시 정리해야 했다.
나머지 짐을 어떻게 처리하고 보관을 해야 할까 많이 고민했다.
이삿짐 업체에서 짐 보관 서비스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알아봤는데 비용이 너무 비쌌다.
그래서 짐을 창고 등에 보관하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아내하고 상의한 끝에 나머지 짐은 처갓집에 보내기로 했다.
처갓집에 사용하던 낡은 가전제품을 우리가 사용하던 제품으로 바꾸는 셈 치고 처가로 짐을 보냈다.
일부는 처가 고모님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셔서 낡은 가구와 가전을 가져가시기로 했다.
그래서 3월에 다시 처갓집으로 짐을 보내는 이사를 했다.
대신 결혼 때부터 가지고 있던 낡은 가구와 쓸모없는 짐은 다 버렸다.
평소 잘 버리지 못하는 습관 덕분에 혹시나 하고 보관하던 짐을 뒤도 안 돌아보고 버리기로 했다.
잘 안 입던 각종 옷가지와 가전 소모품은 중고업자를 불러서 일괄적으로 판매했다.
주변에서 그냥 버리지 말고 판매를 해 보라고 해서 낡은 옷과 낡은 가전이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비용이 될 것 같다고 기대했는데 손에 쥐어진 돈은 단돈 만 원이었다. ㅠ.ㅠ
결국 한국에서 가지고 있던 짐 1/3은 스페인으로 보냈고, 1/3은 처갓집으로 보냈고 나머지 1/3은 버렸다.
그렇게 한국에서만 2번 이사를 했다.
스페인 현지에 도착해서 2주간 임시 숙소 생활을 마무리하고 월세를 구해서 이사를 했다.
이삿짐이라고 해봐야 한국에서 들고 간 캐리어가 전부였다.
또한 임시숙소 하고 새로 계약한 월세집은 1 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짐을 옮길 차를 구할 수가 없어서 직접 옮기기로 했다.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 엘리베이터가 없는 좁은 계단에 무거운 대형 캐리어를 옮기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에는 캐리어에 여러 번 짐을 나눠서 옮겼다.
낯선 시골 도시에 낯선 동양인 남녀가 캐리어를 질질 끌고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동네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애써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날따라 캐리어 바퀴 소리는 왜 이렇게 크게 들리던지......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나이 들어서 별짓을 다 해보네...... ㅠ.ㅠ"
내가 회사에 출근한 사이에 아내가 이미 손가방으로 짐을 몇 번 옮겨두어서 나머지 짐은 4~5번 정도 왕복을 했더니 모든 이사가 마무리되었다.
새로 이사한 월세집은 한국으로 치면 20평 초반대 집이었다.
거실, 부엌, 방 3개로 구분된 집이었고 나와 아내가 둘이 살기에는 딱 좋은 크기였다.
새로 인테리어도 되어 있어서 전체적으로 깔끔해 보였고 아내가 맘에 들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블 침대 1개와 세탁기, 냉장고가 갖춰진 집이었다.
소파와 식탁도 있어서 별도로 가구나 가전제품을 구입 안 해도 되는 집이었다.
물론 이에 대한 대가로 주변 시세보다 월세가 비쌌지만 현지 상황도 제대로 모르는 이곳에서 가구나 가전을 구입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로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스페인에서 1차로 이사가 마무리되었고 우리는 한국에서 배로 보낸 짐이 오기 전까지 얇은 담요와 몇 벌의 옷, 그리고 최소한 식기로 버텨야만 했다.
한국에서 가져간 바지와 티셔츠 몇 벌로 버텨야 했지만 다행히 4월부터는 날씨가 많이 풀려서 버틸만했다.
그리고 새로 경험하는 외국에서의 월세 생활은 나름 재밌었다.
동네 구석구석을 구경을 하는 것도 재밌었고 처음 가보는 가게에서 장을 보는 것도 늘 새로운 경험이었다.
짐이 없어서 굉장히 소박한 생활이었지만 짐이 없다는 것, 비어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맘이 편하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짐으로 1개월 정도 버티고 나서 드디어 한국에서 보낸 짐이 도착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무사히......
우리가 임시 숙소에 있을 때 저녁에 추위와 전쟁으로 잠을 설치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지인한테 카톡이 와 있었다.
수에즈 운하에 화물선이 좌초된 사고가 생겼는데 짐은 괜찮냐고......
순간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운송사에 급하게 문의를 해보았는데 운송사에서도 정확하게 답변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만약의 경우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상황을 보고 계속 연락을 주고받기로 했다.
다행히 수에즈 사고는 해결되었고 우리 짐은 1주일 정도 늦게 도착한다고 했다.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신경 쓰이네...... 딴 나라 얘긴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 보낸 짐은 아침 일찍부터 도착했다.
남미 출신 인부들이 짐을 날랐는데 일이 서툴러 보여 안심이 안되었다.
그래서 옮겨온 짐을 그냥 집 거실에 쌓아 놓으라고만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짐을 풀면 너무 복잡할 것 같았다.
덕분에 모든 짐을 하나하나 개봉하면서 자리를 잡아야 했고 포장 박스는 다시 분해해서 처리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점심도 굶어 가면 짐을 정리하고 박스를 갖다 버리고 강행군으로 짐 정리를 마친 뒤 저녁 8시가 넘어서 한국에서 가져온 짜파게티로 겨우 한 끼를 해결했다.
그리고 대충 씻는 둥 마는 둥하며 잠이 들었다가 다음 날 바로 출근했는데 온 몸에 근육통이 생겼고 결국 그 여파로 주말 내내 몸살 기운으로 하루 종일 고생했었다.
그래도 이사를 하고 이제야 한국에서 보낸 따뜻한 이불을 덮고 잘 수 있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놓였고 안정적인 스페인 정착 생활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2번, 스페인에서 2번, 총 4번의 이사를 했다.
한국에서 많은 짐을 버렸고, 스페인에 와서도 한국에서 가져온 짐을 다시 한번 정리해서 쓸모없는 짐을 많이 처분했다.
"그동안 정말 너무 많은 짐을 안고 살았구나...... 참 무모하고 개념 없이 살았던 것 같네......"
짐을 정리하면서 혼자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래, 이곳에서는 무소유의 삶을 살아야겠어!!!"
그리고 많이 반성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많이 속상하지만 우리는 다시 한번 이사 가야 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 05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