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오래된 Dream Note가 있다.
까만색 표지의 모퉁이가 다 닳아서 벗겨질 정도로 손때 묻은 이 노트는 작성된 지 족히 20년은 넘었을 것이다.
그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Dream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6개월이라면
노트에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
1. 가장 갖고 싶은 것
2. 가장 가고 싶은 곳
3. 가장 하고 싶은 일
4. 가장 되고 싶은 사람
순으로 빼곡히 정리되어 있다.
지금 보니 그땐 이런 걸 원했구나 싶은 것들도 있는데, 시대가 변하여 더 이상 필요치 않은 물건들이다. 예를 들면 CD-Rom 같은~.
몇 페이지를 빽빽하게 적어 내려간 목록을 읽으며 그때의 나를 본다.
그야말로 욕망 덩어리였네.
원하는 게 참 많았구나.
그중 가장 먼저 써 놓은 것은 "내가 설계한 집"이다.
지금은 '건축'에 대한 철학이 조금은 정돈되었지만 당시엔 기초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다. 과거의 내가 첫 장에 두서없이 나열한 문장을 읽다 보니, 그때 원했던 것들이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그렇게 삐뚤빼뚤 나의 서툰 꿈들은 꼭꼭 눌러 쓴 볼펜 자국 아래에 소중하게 박제되어 있었다.
참 신기한 것은 써 놓은 것 중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그렇게 이루며 살고 있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언제라도 친구들이 묵어갈 수 있게 준비된 방 하나' 같은 것이 그랬다.
꿈을 노트에 적는다는 것은, 그냥 말로 뱉고 말았다면 휘발해 사라져 버렸을 그 무엇을 눈에 보이는 곳에 커다랗게 붙여놓은 포스트잇처럼, 잊을만하면 생각을 나게 하는 유익을 준다.
나는 조만간 집을 짓게 될 것이다.
이제 다시 내가 원하는 '집'에 대한 꿈을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집에는 내가 원하는 삶을 담을 것이고 그렇게 지어진 집은 결국 거기 사는 우리들을 닮게 되겠지.
지어질 집을 위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속에 펼쳐진 건축가와 건축주들의 스토리는 모든 집에 깃든 특별함과 고유성을 일깨워준다. 그 안에 담길 것은 결국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고, 간결하게 정리된 생각으로부터 아름다운 집이 시작된다는 걸 마음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