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언맨 May 09. 2017

갈맷길3-1코스: 대연수목원과 자성대

기지개 켜는 봄과 함께 걸었던 지난번 걸음은 동명대학 앞에서 멈추었더랬다. 이번에는 동명대학 앞에서 시작한다. 평화공원과 대연수목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걸어야 한다면 당연 수목원이다. 대리석 길보다는 나무와 꽃이 있는 흙길이 더 정감이 가기 때문이다. 

수목원에 들어서다

하지만 곧 흙길을 버리고 수목원을 따라 흐르는 시냇가로 난 시멘트길로 내려선다. 들꽃 때문이다. 이 길에서는 들꽃이 더 쉬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들꽃도 예쁘다


몸을 굽히지 않고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작은 들꽃, 별꽃이 그렇고 꽃마리가 그렇다. 꽃잎이 다섯인 연한 하늘색 꽃마리는 앙증맞다. 예쁘다. 꽃마리는 몸집이 작은 나의 딸을 꼭 닮았다. 꾸밀 줄도 모르고, 남의 눈치를 보는 일도 없이 커가는 모습이 꼭 들풀을 닮았다. 이제부터는 꽃마리는 은유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들풀 - 나태주)


여기저기 지천으로 깔려 있는 들풀, 세포아풀은 누구나 눈에 익은 들풀이다. 다만 잡초라는 부류에 몽땅 가두어 두는 통에 정작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굽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니, 작은 들꽃이 보인다. 풀밭을 걸어가는 발걸음도 조심스러워진다. 화려한 철쭉 영산홍 꽃그늘 아래 눈에 띄지 않는 들꽃들이 생각보다 사랑스럽다. 큰봄까치꽃, 광대나물, 노란괭이밥, 살갈퀴, 갈퀴덩굴, 개망초, 별꽃. 최근에 알게 된 들풀들이다. 모든 들풀들은 꽃을 피운다. 자기의 계절에. 그들도 꽃을 피운다. 예쁜 꽃을 피운다.


유엔공원은 수목원과는 다른 느낌이다


수목원을 지나 유엔공원 후문으로 들어서면, 수목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정원이 기다리고 있다. 수목원이 곡선의 정원이라면 유엔공원은 규칙과 직선이 지배하는 정원이다. 쭉쭉 뻗어 있는 길, 잘 정리되어 규칙적으로 배열된 묘지들, 군인들은 죽어서도 칼처럼 줄을 지어 누워 있구나.  


분홍 겹벚꽃 아래서


언제나처럼 시간을 흐르고,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꽃은 피고 지고.

벚꽃은 벌써 저버렸지만 이제 막 겹벚꽃이 풍성하게 꽃을 피우고, 그 분홍 그늘 아래 빨간 옷을 입은 풋풋한 청춘들이 꽃처럼 사진을 찍는다. 나이 든 아낙네도 아이와 함께, 나이 든 중년의 남자도, 모두 꽃그늘 아래서 포즈를 취한다. 봄은 모두의 마음을 흔든다. 봄바람이 불면 꽃이 흔들리듯 사람의 마음도 흔들린다.


들풀, 함부로 뽑지 마라


도시의 대지는 숨이 막힌다. 아스팔트로 뒤덮인 대지는 깊은 물속에 빠진 고양이처럼 숨을 쉴 수 없어 죽어간다. 숨통을 열어주는 유일한 공간은 도시의 녹지이다. 커다란 녹지를 소유하고 있는 공원은 목졸린 도시 대지의 허파인 것이다. 또한 도시의 가로수 역시 작으나마 대지에 숨을 불어넣어준다. 도시의 나무와 풀들이 흔들리는 것은 단지 바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바람이 잦아든 날 들풀이 가늘게 떨리는 것은 대지의 깊은 숨결 때문이리라.   


농작물을 키우는 것도 아닌 작은 공터에 무성히 피어있던 들풀을 무자비한 호미질로 뽑아 수북이 쌓아 놓은 것을 보고 마음 한쪽이 아팠던 적이 있었다. 그저 철쭉과 영산홍이 피어있는 곳이었다. 내 눈에는 철쭉과 영산홍이 아름답지만 그 그늘 아래 푸르게 자라고 있던 들풀들로 그곳은 더욱 아름답워 보였다. 큰봄까치꽃, 별꽃, 광대나물, 개쑥갓, 꽃마리, 냉이등이 어우러져 작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잡초를 없애지 않으면 다음 해에는 더 많은 잡초가 날 것이라며 들풀들을 작살을 내놓았었다. 아주머니의 눈에는 그 예쁜 들꽃이 보이지 않았나 보다. 들풀의 푸르름이 그저 흙이 고스란히 드러난 황톳빛 보다 얼마나 더 아름다웠던가 생각하며 아쉬움에 몸을 떨었었다. 들풀이라고 함부로 뽑지 마라. 그 누가 들풀보다 철쭉이, 들꽃보다 영산홍이 더 예쁘다고 했는가. 들꽃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후로는 풀밭에서 발을 내딛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길을 놓쳤지만 예기치 않는 한적함에 콧노래를 흥얼흥얼거렸다


외국어 대학을 지난 후 부두가 내려다 보이는 등성이로 올라가는 갈맷길을 놓쳐버리고 나는 무작정 우암로를 걸었다. 차가 쌩쌩 다니는 길에는 갈맷길 표지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길을 잘못 든 것도 모른 채 그냥 걸었다.


아름다운 길은 아니었지만, 정말 한적한 시골길 같은 곳이 있었다. 도심에 이런 길이 있다니, 새 길이 나면서 버려진 길이었다. 인적도 뜸하고 차량의 통행도 뜸한 작은 도로 가에는 갖가지 들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절로 콧노래가 나올 만큼 한적하고 기분 좋은 길이었다. 여행의 한 가지 묘미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예기치 못한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닐까. 바로 그런 소박한 길이 있었다.


날 잊지 말아라 

내 맘에 맺힌 그대여

밤마다 꿈속에 네 얼굴 사라지잖네

날 잊지 말아라

내 맘에 맺힌 그대여


끝까지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를 무한 반복하며 흥얼거리는 나 자신은 그 순간 행복했었다.



문현 곱창 골목에서 여행자처럼 돼지국밥 한 그릇을 뚝 딱


문현 곱창골목을 이리저리 다니다 문이 열린 돼지국밥집에 들어서서 배낭을 한쪽에 벗어 놓고서 돼지국밥을 한 그릇을 비웠다. 주방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은 옛날 시골장터의 주막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주었다. 곱창골목을 나와 동천을 가로지르는 범일교를 지나 자성대 쪽으로 향한다.



자성대


조선시대 부산포에 들어서면 가마처럼 생긴 산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이 산이 증산이다. '가마처럼 생긴 산'이란 뜻인 부산釜山의 명칭은 이 산에서 유래한 것이다. 임진왜란 전에는 부산포에 외성과 내성이 있었다고 한다. 내성은 증산을 둘러싸고 있던 부산진성이었고, 현재 자성대가 있는 곳에 외성이 있었다. 내성인 부산진성은 모성母城이었고, 자성대에 있는 외성은 자성子城이었다. 엄마와 아들. 임진왜란 때 자성을 점령한 왜군이 자성 정상에 장대를 세웠다. 이렇게 해서 자성대라는 명칭이 생기게 되었다.


위 그림을 보면 바다 위 언덕에 자리 잡은 것이 영가대, 그 뒤에 있는 성이 자성, 가마를 닮은 증산 아래에 있는 성이 부산진성인 모성인 듯하다. 현재는 바다를 매립하여 이전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영가대는 조선 후기 통신사를 비롯한 역대 대일(對日) 사신들이 무사 항해를 기원하며 해신(海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해신제당(海神祭堂)의 역할은 물론, 출발과 귀환의 상징적인 지점이 되기도 하였다.' (부산역사문화대전)


현재 영가대는 자성대 아래쪽으로 옮겨져 있다.


자성대 정상에 있는 진남대
진남대


영가대, 영가대 뒤쪽에는 조선통신사 역사관이 있다.
부산진지성, 자성대의 서문

드디어 부산진시장이다. 여기서 이 날의 갈맷길 답사를 마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은 이미 오륙도를 지나 부산항 대교를 지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