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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맨 Oct 31. 2019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

갈맷길 4-3 구간

2018년 2월 3일, 달력을 뒤져 보니 이 날 이 길을 걸었다는 것을 알겠다. 당시에 남겨놓은 기록과 사진을 보면서 다시 그 날을 돌이켜 보았다. 


걸은 길은 다대포 꿈의 낙조 분수대에서 시작하여 아미산 전망대를 거쳐 응봉 봉수대 입구를 지나 장림포구에 이른다. 그리고 낙동강변길을 걸어 낙동강 하구언 입구에서 멈춘다. 총거리는 10여 km를 4시간 걸었다. 


입춘을 코 앞에 둔 날, 동장군이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봄맞이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오랫동안 걷지 못했던 길을 찾았다. 겨울 동안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응어리는 걷지 못한 것이 병이 되었던 모양이다. 숲으로 들어서도 봄의 자취는 코 끝도 보이지 않는 헐벗은 모습이었지만 가슴속에 내려앉은 찌끼는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이 곳은 강물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니만큼 색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다. 아미산 전망대에서 훤히 볼 수 있고, 응봉 봉수대로 가는 널찍한 임도에서도 내내 보이는 풍경은 다른 곳에서 쉽사리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강물이 물어다 준 모래가 켜켜이 쌓여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머리를 내밀고 있다. 이런 모래톱이 소 잔등처럼 생겼다 하여 '등'이라 불리는데, 아직 섬이라 이름 붙이기에는 부족한 모래섬을 '등'이라 부른다. 도요새가 많이 날아든다 하여 도요등, 백합조개가 많이 잡히는 곳이라 백합등, 맹금이 날아드는 곳은 맹금등. 섬의 모양을 갖추면 '도'자를 붙여준다. 장자도, 진우도 등에는 나무들이 자라 숲을 이루고 있다.  


아미산 둘레길 끝자락을 지나면 장림포구다. 지금은 이 일대가 공단으로 조성되어 예전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다만 장림이란 명칭과 강가의 포구만이 옛 모습을 희미하게 되살려 주고 있다. '장림'이란 '긴 숲'이란 뜻인데, 예전 이곳에는 강을 따라 숲이 길게 늘어서 있었던 모양이다. 낙동강 을숙도 너머로 저녁놀이 질 때면 황금빛으로 물든 강물 위로 돛을 펼친 고깃배들이 끼룩끼룩 우는 갈매기 벗하여 포구로 돌아오는 정경이 정겨웠을 포구. 그동안 갈맷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포구를 거쳐 지나갔지만 모두가 바다를 끼고 있는 포구였다. 장림포구처럼 강을 끼고 있는 포구는 처음이다. 


장림포구는 옛 포구의 아련함과 세련된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옛 포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뭔가 아련한 옛 모습을 떠 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바다 포구는 새파랗게 선을 그은 수평선, 그리고 방파제를 지키고 있는 하얀 등대, 빨간 등대가 있는 풍경이다. 강을 끼고 있는 장림포구는 아주 다르다. 하늘과 바다를 가르는 수평선 대신 저 멀리 강 건너 산줄기가 하늘 아래 누워 있다. 포구와 낙동강이 교차하는 곳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수평선을 대신하듯 놓여있고, 다리의 다리가 다리 아래의 공간을 삼등분하며 물속으로 다리를 담그고 있다. 포구 양편에 서로 마주 보듯 나란한 계류장에 매여있는 작은 배들, 또한 강물 위로 머리를 쭉 내밀고 있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나무 기둥들이 물 위에 길게 자신보다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발을 담그고 있다. 



포구를 바라보는 위치를 달리하여 시점을 바꾸니 장림포구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전면을 드러낸 장림포구는 형형색색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지개 빛으로 칠해진 모습과 네덜란드 풍차의 모습을 한 화장실 때문이었을까, 포구는 마치 이국의 어느 작은 포구처럼 보였다. 무지개색으로 칠한 것은 부근에 있는 홍티(무지개) 마을을 염두에 둔 것일지도 모른다.     



장림포구를 휘 둘러보고 난 후 낙동강 하구언까지 길게 뻗은 길을 걸었다. 이 길은 아직도 겨울이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은 강을 따라 봄기운에 쫓겨 달아나는 듯 마지막 어기장을 부리며 불어댔다. 차가운 바람이 눈동자에 부딪히면서 눈에서는 눈물을 줄줄줄 흘러내렸다. 겨울바람이 세차게 불 때는 보안경이라도 가지고 다녀야 하겠다. 


강을 따라 일직선으로 쭉 뻗은 길은 걷기 힘들었다. 비단 바람 때문만은 아니다. 곧은길은 효율적 일지는 몰라도 걷기에는 매력 없는 길이다. 목표가 저기 보인다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있다니, 그 목표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보고 있는 물은 끓지 않는다더니, 그런 격이었다. 강가에 먹이활동을 하는 철새들마저 없었더라면 이 길은 걷기에 더 힘들었을 것이다. 난 낙동강 하구언을 건너기 직전에 길을 멈추었다. 


다음 갈맷길은 낙동강을 건너 을숙도를 지나 가덕도로 가는 길이다. 그땐 봄기운이 가득한 그런 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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