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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맨 Aug 08. 2020

가덕도 갈맷길 풍경

갈맷길 5코스


부산 갈맷길 5코스는 총 42km, 4번에 걸쳐 걸었다.


1

갈맷길 5코스는 낙동강 하구언 이 쪽에서 시작한다.


낙동강 하구언은  바닷물의 역류를 막기 위해 지은 인공구조물이다. 산란을 위해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나 강에서 바다로 내려가는 물고기의 통행이 막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 하지만 물고기가 다닐 수 있는 어로(물고기길)를 만들어 놓았다.


어로 관람실에 가면 끊임없이 뒷 지느러미를 흔들며 세찬 물을 거슬러 상류로 향하는 은어떼를 볼 수 있다. 작은 은어들이 때로는 바위 뒤에서 또는 수초 속에서 세찬 물의 흐름을 피해 쉬어 가기도 한다. 송어 산란기에는 힘차게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송어도 볼 수 있다고 한다.
 

5코스를 출발하자마자 을숙도다.  


새가 많아 '새 을', 물이 맑아 '맑을 숙', 섬이라 '섬 도'. 새가 많고 물이 맑은 섬. 또 어떤 이는 '멋있다'는 일본말에서 이 이름이 나왔다고도 한다. 신이 나서 '을쑤'하는 말에서 나왔다고 해도 그럴듯한 이름이다.
 

을숙도는 섬이 되었지만 아직은 섬이 되지 못한 섬들이 있다. 상류로부터 떠내려온 토사는 낙동강 하구에 이르러 느려진 유속을 견디지 못하고 침전된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침전된 토사들이 퇴적되어 마침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러한 섬 아닌 섬을 '등'이라 부른다. 나는 '대마등'을 왼편 어깨너머로 두고 걸었다.   
 

2
갈맷길 5코스를 찾은 두 번째 날에는 비가 왔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비가 그치면 그치는 대로 걸을 작정하고 우산을 들고 나선다.


삶이란 언제나 행복할 수만은 없고 그렇다고 항상 불행한 것도 아니듯이 걷는 것도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님을 느낀다. 바둑판처럼 쭉쭉 직선으로 이어진 길은 언제나 힘들다. 목표지점이 눈에 뻔히 보이지만 심리적 거리는 아주 멀게만 느껴진다. 이런 길은 싫다.

 
로마제국을 거미줄처럼 이어놓은 로마가도는 직선 도로의 장점을 극대화한 길이었다. 이 길은  제국의 방위와 경제 교류, 그리고 제국 전역의  문명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쭉 뻗은 도로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인간사에 분명히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마음을 치유하는 행복한 길은 자연의 모습을 닮은 굽이진 길일 것이다. 그런 길에 서면 저 구비 너머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작은 기대감을 일으킨다.  
  
가덕도가 가까워지면서 이 지역만의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물 위에도 도로가 있다. 배가 다닐  수 있는 뱃길을 표시하기 위해 수면 위에 세워놓은 장대 기둥들. 그 사이로 배가 지나다닌다. 그리고 조개 양식이나 굴 양식을 위해 물속에 박아놓은 장대들. 물 위로 튀어나와 있는 수많은 장대들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3

가덕도의 6월은 꽃 천지이다. 마을 집집마다 빨간 장미와 분홍낮달맞이꽃이 여름향기를 날리고, 연대봉 너머 대항 가는 길엔 금계국이 지천이다. 파란 바다가 보이는 옛길 따라 노란 꽃물결이 바람에 넘실거린다. 이맘때의 가덕도 갈맷길은 흐드러진 노란 금계국 세상이다.
 
대항 가는 새 도로가 난 이후로 옛 도로는 잡초가 무성한 잊혀진 길이 되었다. 찾는 이 없는 이 길은 대항까지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갈맷길이 되어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대항, 선창가에 늘어선 배들은 물결 따라 찰랑인다. 방파제에 그려진 푸른 그림과 등대 너머 먼바다를 가리는 시커멓게 보이는 곶이 존재하지도 않는 흑백사진과 같은 향수를 일으킨다. 그리고 바랜 빛깔의 희미한 거제도가 먼 하늘 아래 누워 있다.


459m의 연대봉을 넘어온 지친 발걸음을 여기 대항 선착장에서 멈춘다. 선착장 그늘아래 앉아 파란 해풍을 맞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천천히 마시면서 더위와 피로를 식혔다.    

 
커피를 다 마시고 안 후에도 한참 동안 거기에 앉아 있었다.
 


4

지난번 대항 가는 길은 가덕도 중심을 가로질러 남쪽을 향하는 길이었고, 이번 길은 동쪽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었다.  섬의 풍경이 사뭇 다르다.  
 
물고기가 많아 우글우글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라 어음포(魚音浦)라 이름 붙은 포구에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바닷물이 누렇게 보인다고 누릉원이라 불리는 곳의 풍경은 가덕도 동쪽 해안선 길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다.  
 
동선새바지에 이르렀을 때 시장기가 느껴졌다. 국숫집을 보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퍼뜩 났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물어 봤다.
"아주머니, 카드도 됩니까?"
"카드는 안 되는데요."

약간 미안해하는 말투다.
 
"우짜지?"

잠시 망설인다. 배는 고프고 국수는 먹고 싶고...
"그냥 드세요. 요새 현금 안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많죠. 나도 그냥 카드만 들고 다닐 때가 많은데..."
 
"그럼 고맙긴 한데, 그렇게 해도 되나요?"
"나중에 계좌로 부쳐 주세요."
"그런데 아주머니, 나중에 돈을 안 부쳐 주면 어쩌시려고요?"
"뭐 얼마 안 되는 돈 안 부쳐 주면 할 수 없지요. 그런데 아직까지 돈 떼먹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어요."
 

낯선 사람에게도 외상으로 주는 인심이 아직도 살아 있었다.


국수 먹고 눌차도로 들어서서 정거마을을 향한다. 동쪽 바다가 풍랑으로 거칠게 요동치면 배들이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던 곳이 닻거리 마을(정거마을)이다.  


정거 생태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양쪽 벽에는 색이 바래져 가는 정겨운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으니, 할머니 한 분이, "뭐 볼 게 있다고... 오래되어서 볼 게 없구먼!" 하고 지나간다.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여행객인 나에게는 여전히 볼거리였다.
 
날마다 보는 풍경은 눈에 익어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고 느껴진다. 익숙함을 지워내고 새로움을 덧 입힐 수 있다면,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 하지만 그저 회색빛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새로움을 찾아 떠나든지 아니면 익숙함 속에서 작은 새로움을 찾을 수밖에.


아주머니에게 국수 값을 부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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