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장산 너덜겅
말로 하면 빛을 잃어버리는 정경들이 있다
그에겐 말이란 눈으로 본 것으로부터 그 아름다움을 빼앗는 일이었다.
-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중에서
장산 너덜겅, 언제 흘러내린 돌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돌의 왕국이 산비탈에 펼쳐져 있다.
누군가가 그 너덜지대를 가로질르는 길을 처음 걸었고, 누군가는 길을 다듬었으며,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돌 위에 희미하게 새겨지고 있었다.
오래전 이 길을 올랐던 소년은 이제 중년이 되어 이 길 위에 섰다.
수십 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그 날의 기억들이 사방에 흩뿌려져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상념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당일의 정경에 마음을 열었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가는 길과 오는 길의 풍경이 다르다더니, 다시 돌아오는 길에 선 돌무더기들은 방금 걸었던 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