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부딪히기 전.. 꿈이란
라떼는 말이야,
“넌 꿈이 뭐니?”
어른들이 이렇게 물으면
아이들은 망설임 없이 “대통령이요!”라고 대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때,
아이들의 작은 목에는 불끈 힘줄이 솟았고
눈빛은 왠지 반짝였다.
진지하게, 심각하게, 가슴속에서 꺼낸 그 한마디.
하지만 어른들은 슬쩍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대통령이라…”
아이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도 있었겠다.
진심으로 말했는데 웃다니.
그 순간 아이는 속으로 중얼거렸을지도 모른다..
‘왜 저러지? 난 진짜 진심인데.’
또 다른 아이에게
“넌? 꿈이 뭐니?” 하고 물었더니
“전, 유치원 선생님이요. 아기가 너무 예뻐서요.”
순수하고 귀여운 대답이었다.
아직은 아기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모를 때였고
아이들은 그저, 예쁘니까, 좋아서, 그렇게 꿈을 꿨었을것이다.
그 시절의 대답들은
현실을 몰랐기에 오히려 아름다웠을지도..
현실에 부딪히기 전의 꿈이란
상상력과 순수함의 결정체였겠지?.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말들이
한없이 소중하고 기특하게 느껴진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했다.
요즘 아이들에게 “꿈이 뭐니?”라고 물으면
대답은 짧아졌고, 시선은 흔들린다.
“잘 모르겠어요”
혹은
“…..”
말 없이 침묵만 흐르기도 한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꿈을 말하는게 왜 어렵지?
왜 꿈을 말하지 못하지?
아.. 답답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도 아니였다.
오빠네 가족과 함께 사는 나에게도 또래 아이가 다섯명이다 있다.
다섯 아이 다 꿈을 말한건 아니였다.
가수가 되겠다고,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말했던
내 아이 역시 중학생이 되자
“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말해 날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 모습을 본 네명의 동생들 역시 첫째와 날 번갈아 쳐다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였다.
그 때 부터 였을까?
큰 아이가 미래를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시간들이.
보통 아이들을 보며, 많은 부모들이
왜 이렇게 꿈이 없다고 하는거지??
요즘 아이들은 왜, 의욕이 없어?
라고 생각하고, 화를 참지 못한다.
하지만 상담실에서 만난 수많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말이 결코 의욕이 없어서가 아님을 알게 된다.
“꿈이 없어요”라는 말은
‘나, 사실은 두려워요’라는 속마음일지도 모른다.
‘해보고 싶은 게 있지만, 내가 해도 되나 싶어요.’
‘혹시 실패하면 어쩌죠?’
‘부모님한테…말하면 “그걸로 먹고 살수 있겠니?”라고 혼날까봐 무서워요.’
‘엄마가 알면, 날 가만히 두지 않을꺼예요.’
요즘 아이들은 끝없이 비교 당하고
완벽하게 준비된 것만 인정받는다.
꿈을 꾼다는 건 누군가에게 말할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그 말 한마디 꺼내는 것조차
이젠 쉬운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어른들 못지 않게 아이들도 실패는 두렵다.
견딜 단단함도 없고, 힘도 없고, 재생력도 없다.
실패를 한 번도 편안하게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면 안 될 선택’을 먼저 배운 아이들은
‘하고 싶은 일’은 스스로 걸러버린다.
무엇을 말해도 틀릴 것 같아
차라리 침묵을 택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속이 탄다.
“꿈이 있어야 준비도 시키지!”
“하고 싶은 걸 말해야 도움도 주지!”
그 마음 이해한다.
내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니까.
그런데, 정말 하고 싶은 걸 말하면 도움을 줄까?
반대부터 하지 않을까?
“니가 세상을 몰라서 그래!!”
“지름길을 알려주는데, 왜 말을 안듣니?”
“도대체 왜 말을 안듣는 거야??!!”
하지만 어른들의 조급함이 아이를 더 움츠리게 만들 수도 있다.
한 중학교 학부모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이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제가 자꾸 직업 목록을 보여주게 돼요.
그런데 그럴수록 더 말을 안 해요.”
사실 부모도 불안하다.
이러다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아이의 미래가 불안해서 더 다그치게 된다.
하지만 조급함이 ‘함께’가 아닌 ‘빨리’를 선택하게 하면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화는 점점 짧아진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꿈은 단순한 안정,연봉,미래가 있는 직업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지’ 몰라도 괜찮다.
대신 지금 내가 좋아하는 건 뭔지,
흥미가 가는 건 어떤 건지,
싫어하지만 잘하는 일은 뭔지를 살펴보자.
그렇게 색칠해본 흥미 지도 위에서
분명 어딘가 교차점이 보일 거다.
실패해도 괜찮다.
작은 실험처럼 이것저것 해보면 된다.
동아리 활동, 체험, 봉사, 아르바이트…
그 모든 경험은 내가 나를 더 잘 알게 해주는 데이터다.
해봐야 안다. 해보면 알 수 있다.
어떤 한 학생이
진로 캠프 마지막 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전.. 꿈은 아직 모르겠는데… 뭘 하고 싶은진 알아요...”
그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아이들은 처음 발을 디딜 용기를 기다리고 있다.
꿈이 없다는 말은 어쩌면
‘ 기다려줘’
‘준비가 안됐어’
‘난, 준비가 됐지만, 누군가에게 아직 말할 준비가 안됐다’
라는 조심스러운 신호일지도.
그 신호에
어떤 대답 대신,
그냥 눈썹 한번 산뜻하게 올려주면서
‘그래~’라는 의미
‘널 믿어’라는 의미
‘그래 한 번 해봐’라는 의미의 제스쳐는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