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각하던 시간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캠핑카 타고 강의하는 엄마강사입니다.
춤추고, 그림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끼가 많았던 나였다.
동네 어르신들은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하셨다.
국민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운동회 메인 리더로 뽑혔지만 육성회비를 내지 못했던 부모님은 "안 하면.. 안될까? 꼭 하고 싶니?" 라며 그만 두길 원하셨다. 나도 모르는 어른들 세계가 있었다는 건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안의 끼를 감췄고, 그 끼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선택했다.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 초록색, 파란색을 하얀 스케치북에 그렸는데, 그 그림들은 꽤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
국민학교 5학년..
길가, 햇볕 잘 드는 2층집 하얀색 레이스 커튼이 있던 내 방은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해가 어디서 뜨는지조차 알 수 없는 1층 방 모퉁이로 바뀌었다. 집 앞 비둘기색 자동차가 있던 주차장엔 낡은 자전거가 서 있었다. 어려도 알 거 다 아는 나이.. 많이 힘들었고, 슬펐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는 풀이 무성한 기찻길을 가로질러야 갈 수 있었는데, 물가에 걸쳐진 기찻길을 걸을 때면 앞이나 뒤를 잘 봐야 했고, 기차가 오는 시간을 잘 알아야 했다. 안 그랬다간 생사의 사선을 넘어야 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안전한 인도 대신 지름길인 기차가 다니는 철 길 위를 양팔 벌러 균형 잡으며 걷거나, 철길 아래 자갈 틈 나무판을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학교와 집을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친 짓이 따로 없다.
엄마가, 선생님이 절대 철길로 다니지 말라고 이야기했지만, 우린 지름길로 다녔고,
엄마가, 선생님이 알면 혼날까 봐. 아이들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침 조회(조례) 시간에 붉어진 눈으로 담임선생님이 옆반 아이가 마주 오는 기차를 피하지 못해 강가에 떨어져 하늘나라에 갔다는 말 한동안은 그 길로 다니지 않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나면 금방 잊고, 우리는 지름길을 택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나는 초등학교 6학년 여름 방학 더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리다 보니 1장이, 2장이 되고, 3장, 4장을 그렸다. 몇 시간 동안 그린 그림이 아니고, 일주일, 열흘, 한 달이 넘도록 스케치북에 그림을 매일매일 조금씩 그렸다. 하지만 미술 숙제는 단 한 개의 작품만 제출할 수 있었다. 너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고민 끝에 한 개의 작품을 제출했다.
그때 짝꿍이 내 다른 그림을 보며,
" 제출 안 하는 그림.. 나 하나만 내 숙제로 주면 안 돼?"
친했던 친구의 부탁이라 고민은 했지만, 흔쾌히 허락했다.
한 달 내내 매일 조금씩 그렸던 그림 뒷장에 짝꿍은 자기 이름이 적었고, 반장이 걷어갔다. 이틀 뒤 담임 선생님은 전교 우수상이 우리 반에서 나왔다며 기분 좋게 말하셨는데, 짝꿍 이름이 불려졌다. 짝꿍은 날 한번 쳐다보곤 교탁에 나가 반아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내가 그린 그림이 짝꿍의 이름으로 학교 입구에 반짝이는 상패 스티커와 함께 금색 액자에 걸렸다. 보면서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내 숙제를 짝꿍이 낸 걸 알면 선생님께 혼나니 비밀로 하자는 이야기를 했던 터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린 마음이 속절없이 녹아내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잔디가 있는 안전한 기찻길을 두고..
그 기찻길..
철길을 걷다가 철길을 받치는 나무판 사이 틈으로 보이는 저 아득한 강가가 보였다.
평상시에도 쳐다보면 오금이 저렸던 길이었다.
혹시라도 걷다가 기차라도 온다면..
그린데 왜 인지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너무 속상해서 그랬을까.
발을 헛디디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
떨어지면 아플까? 물이 차가울까? 엄마한테 혼날까?
라는 생각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다.
다시 생각해도 양팔에 나 있는 털이 쭈빗쭈빗 닭살처럼 솟구치는데,
왜 이렇게 한심한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림 따위가 뭐라고 철길 위에서 그리 많은 생각을 했던 건지..
빼어간 것이 아니었는데도 속상했다..
사람들은 내 그림이 아니라 친구의 그림으로 알고 있는 게..
그렇게 친구의 이름으로 올라가 있는 그 그림이..
어린 마음은 그렇게 저작권의 의미를 처음 깨달았다.
세월이 흘러 강사가 된 어느 날,
강의하러 간 기관에서 담당자분이 지난달 강사님과 내 강의자료가 똑같다고 말하셨다..
"? 네? 제가 만든 자료라.. 다른 분이 사용할 수가.. 없을 텐데요.."
알아보니 그 강사님은 다른 강사님께 받았다고.. 또 그 다른 강사님은...
여기저기 수소문해 준 강사님들이 내게 말해준 사실은..
레포트*드, 해피캠*스에 내 자료가 있다는 것...
그 순간 알게 되었다. 누군가 내 자료를 무단으로 공유했다는 것을..
내가 계획하고 디자인해서 만들고, 강의했던 내 강의 자료는
레포트*드, 해피캠*스 등에 올라와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팔리고 있었다.
“아....”
정말 머리털이 솟구치고, 온몸의 피가 머리에서 터질 듯한 감정을 느낀다.
저 강의 자료를 만드느라 한 달 동안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저 강의 영상을 만드느라 촬영하고, 디자인하고, 편집하고 날 밤을 새웠던가??
내 강의 자료를 모르는 다수에게 “돈”을 받고 팔았다? 고?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내 자료를 내 허락도 없이 게시한 사람에게 “결제”를 하고 다운을 받고 사용한다?
정말.. 자존심이 상한다..
다른 사람이 내 자료를 마음대로 올린 것도 화가 나지만 더더욱 나를 화나게 한건..
바로..
그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강의 자료를 바꿨을 텐데..
그럼 이렇게 부끄러운 일은 없었을 텐데..
저작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내 어린 시절 아이에겐
허탈함과 무기력.. 삶을 포기하고 픈생각을 줬고,
어른이 된 내 마음엔 분노를 안겨줬다.
그 뒤로 난 모든 기관에 ‘강의자료 동의서’를 받는다.
그곳 내용엔 강의가 끝나고 나면 모든 자료는 바로 폐기할 것!!
usb에 담아 가거나 내 노트북을 갖고 가면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하실 수 도 있지만, 공공기관, 특정 기관은 보안이 중요하기에 외부 노트북이나 usb가 입구에서 반입 자체가 안 되는 경우도 종종 있고, 더 큰 이유는 기관 영상, 음향 시설이 고르지 않아 강의 전 기관 담당자가 미리 플레이해서 작동을 확인하고, 조정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서다.
예전엔 많은 사람들이 관심 있는 자료, 비디오, 스터디영상, 가수 노래등 마음대로 복제하고 나눠주고, 팔기도 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다들 그러니 그랬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공인뿐 아니라 개인의 저작권도, 초상권도 매우 소중히 생각하고, 보호해 주려고 노력한다.
아직도 일부 사람, 나라등은 ‘저작권 따위’ 신경도 안 쓴다.
만약. 걸리면 그 사이트를 폐쇄하고, 다시 개설하고, 또 폐쇄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개인, 기관, 나라 모든 이들의 인식이 “ 나부터”,“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을 벗어나 소중히 여겨주고, 보호해 주길 바란다.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응모부분_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