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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50! 캠핑카를 샀다

by 캠강맘

— 인생 2막을 향한 용기 있는 출발 —


“집에 차 있는 사람 손들어!”

국민학교 1학년.. 벌써 몇 십년 전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담임 선생님의 말에 나는 누구보다 신나게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가, 다시 올리며 뿌듯해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난다.


우리 집엔 차가 있었다.

지금은 이상하지도 신기하지도 않던 그 시절..

화장실이 재례식이라 양쪽 발을 내려놓은 나무판이 부셔지기라도 하면 바로 똥통으로 직행하던 시절


아버지는 1986년, 사업으로 전국을 누비셨고, 아버지가 출장을 떠날때면 엄마랑 나는 계곡에 내려 물장난을 하고, 수박을 부숴 먹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캠핑이었지 싶다.


그래서 나도 아부지 팔자 닮아 전국으로 강의도 가고, 컨설팅도 다니나?


2000년 25살, 결혼을 앞두고 남편은 면허도 없는 나에게 스틱 승용차를 선물했다.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차를 가진 내가 자랑스럽던 그 시절.


기름 많이 안 먹고, 고장 잘 안난다고 스틱 승용차 아반테를 운전하기 위해 1종 트럭면허를 땃었다.

파워핸들이 아니다보니, 25살 설겆이도, 빨래도 안했던 내 손바닥엔 굳은살이 생기고, 물집이 생겼더랬다.


19살 고등학교 3학년 갑작스레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고, 아버지의 침묵에 의해 이문계에서 취업반으로 변경되며, 그해 2학기 취업을 하게되었다.


그리고 집 생활비와 오빠 재수, 삼수,사수..결국 대학 등록금도 전부 부담하며, 내 학업은 뒤로 멀리 멀리 보이지 않을 만큼 숨어버렸었다. 그러다보니 살림 대신, 부모님 경제력을 돕기 위해 가장 아닌, 가장이 되었고, 나를 예뻐해준 4살 연상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었다.




첫차가 '으르렁'소리를 내며 언덕 위를 달리기 어려워하던 17년이 되던해 아이들 케어를 해주는 부모님, 아이들과 가족과의 여행을 위해 큰 차로 바꿨을 때, 엄마는 "딸이 아버지 팔자를 닮았다"고 좋아하셨고, 아버지는 "이런 딸을 낳은 건 내덕분 그리고, 지금 이렇게 움직일수 있는건 사위 덕분"이라며 웃으셨다.


그러다 모든 걸 멈춰 세운 코로나 시기.


사람들 사이엔 거리두기가 생기고, 협회 운영은 어려워지고, 월세를 내기 위한 강의는 줄어들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고, 한때 팔아버린 카니발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풀리고, 다시 스물스물 강의가 생기던 어느 날, 마음 한 구석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래, 캠핑카를 사자.

사실 난 이미 준비돼 있었다.


몇 달을 고민하고, 남편의 약한(?) 반대가 있었지만, 아이들은 응원해주리라.


미리 예측하지 못했지만

2020년, 강의가 거의 중단된 시기에도 45인승 대형면허와 견인차 면허를 따놓았고,
예전에는 남편 몰래 캠핑카용 마을버스를 계약했다 들켜 예약금을 포기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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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저녁을 먹고, 드라마 연속극을 보며 과일을 먹노라면 옆에 딱 달라붙어 작전을 시작했다.

"안돼!"

"안돼!"

반복되던 어느날

" 나, 살꺼야! 살꺼야~ 사고싶어!, 차 사게 해줘~"


"그래~ 사, 작은걸로 사"

"아니! 나 카니발~ 저번에 판 카니발~"

몇날 몇일 조르고 조르는 내 모습을 본 아들이

" 아빠, 나도 엄마랑 전국 여행도 하고 그럴께, 사게 해줘!"


아들 덕분에? 맘 약한 남편 덕분에? 응원해준 딸과 엄니 덕분에?

이번엔 진짜 해냈다.
“내 나이 50, 캠핑카를 샀다.”


이제 평일에는 친정엄마를 태우고 전국 맛집을 돌고,
주말엔 남편과 모닥불을 피우며 인생을 즐긴다.

그리고 말하리라.


"내 인생은 이제 시작이라고!
인생은 오십부터!
다시 꿈을 꾸고,
내 장거리 마라톤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고!"


당신도 인생 2막이 기다려지나요?


혹시 지금 망설이고 있다면,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그 질문부터 던져보세요.


나를 위해 준비한 용기가 언젠가 인생을 바꾸는 순간으로 이어질 거예요.


괜찮아요. 늦지 않았어요.


우리의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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