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할(2)

by 김문수

그날 신문 1면에는 피 흘리는 시민들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자랑스러워하는 군인들의 사진과 함께다. 길가에는 군용 트럭이 시체들을 나르고 있다.

진명은 근방의 방송국으로 향한다. 진수가 폭도라니, 그런 오명은 사고 싶지 않았다. 방송국은 불탄 채였다. 그는 벽에 기대어 주저앉는다. 동네 사람들이 그를 집으로 데려다 준다. 감사 인사를 하고 그저 초 하나를 킨다.

진수의 사진을 놓고, 그 옆에 며칠 뒤 어머니의 사진이 놓였다. 아버지의 사진은 백방을 돌아다녀도 없어 놓지 못한다.

쇼였을까. 제발 쇼였으면 좋을 것이라 그는 생각한다. 진수의 유인물을 다시 짚어본다.

*(1987)
몇 년이 흘렀다. 뜨거운 유월이다. 그간 일이 많았다. 진명은 아주 오랜만에 진수와의 마지막 대화가 깃든 종이를 꺼낸다. 수십장 복사한다. 전국에 배포하기로 동기와 결심했다. 이제 밖으로 나갈까. 그는 머리를 감고 거리를 나선다. 거리에는 사람들과 음악이 흐른다.

며칠 뒤 진수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던 것임을 알았다. 퍼뜩 앳된 진수의 얼굴이 떠오른다. 진수는 지금쯤 스물여섯이려나. 꼭 가고 싶다던 대학은 갔을까. 여자친구는 한 번쯤 사귀어 봤으려나.

여름의 열기는 갔다. 기억만 남은 가을이 찾아왔다. 적어도 전보단 났다. 세상만큼은 그렇고 몸과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2004)
나름대로 수치화해보자면 9 할은 그렇게 채워진 것이다. 1 할은 어디서 채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진수는 9 할 중 6 할은 채웠다. 과도한가. 아니다. 김진수는 짧지만 긴 삶을 산 것이다. 불완전함이 아들 영진에게 옮겨가는 것이 보인다.

진수가 죽고 이십사년이 지났다. 밤이 적적하다. 진명은 편지지를 꺼낸다. 오래되어 부드럽다. 그와 동시에 찢어질 것 같기도 하다.
자랑스러운 동생에게.
여기까지 쓴 후 진명은 펜을 내려놓고 가슴을 움켜쥔다. 더 쓸 여력이 없다. 자는 영진을 바라본다. 10 할이 채워지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는 눈물을 훔치며 바들거리는 손으로 9.9 할이라 적는다. 힘이 들쑥날쑥하여 글씨가 엉망이다.
심장이 조인다. 끝은 없는가. 있어도 그것이 진정 끝인가. 진수는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 잔향으로 남아 있다. 그때 같이 죽을 걸 그랬다. 시끄러운 도청과 삽시간에 커졌다 작아진 소음들. 가두 방송들….

십수년 만에 익숙한 노래를 연속 재생으로 튼다. 음질이 별로다. 끊긴다. 자주. 그래도 들을 만하다.

사랑도 명예도 ……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바들거리는 입술을 열어 찬찬히 따라 부른다. 사십 사세의 애잔한 움직임이라. 곤히 자는 아내가 뒤척인다. 진명은 아내에게 이불을 끌어 덮어준다. 잠시 뒤 그도 자리에 눕는다. 푹신하다. 잠이 몰려온다. 벌써 새벽 세시다. 그나마 오늘은 일찍 잠드는 편이다. 물론 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여섯시에 눈이 뜨인다. 빠르게 잠들어야 한다. 앞에 어른거리는 군중이다. 진수다. 라디오와 불탄 방송국이다. 신문 기사면이다. 열을 맞춰 질서 정연한 군인이다. 흩날리는 유인물과 금속 소리와 애국가다. 그의 잠을 방해한다. 어떻게든 떨친다. 귀에는 온갖 소리로 얼얼하다. 터지는 소리와 총질하는 소리, 비명 소리.

그렇게 그만이-일단 이 공간에서는 그 뿐이다-느끼는 하루가 저문다. 진명은 식은 눈물을 어루만지며 몸을 꾸욱 웅크린다. 눈을 감는다. 또 똑같을 날을 맞이하기 위해. 앞으로 쭉 이럴 것이다. 움직일 여력도 없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