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해본 생각

죽음에서 나오는 감정에 대해

by 김문수

앞서서, 이 글에 대한 비판이나 분노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마련이니 말이다. 이 글은 나의 가치관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지, 타인을 구속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전통적인 유교적 행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물론 내가 유교에 대해 빠삭한 사람은 아니지만, 여러 부분 개인적인 가치관과 합치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공자의 죽음관에서, 죽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애도는 마땅하다고 말한다. 왜 타인의 죽음에 반드시 애도를 펴해야 하는 건지 궁금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엄마가 사망한 직후 수영장에 놀러 가 여자친구를 사귀게 된다. 이후 살인을 저지르고 받는 재판에서, 검사는 그 '살인' 이 아닌 더욱 이전의 일인 '엄마의 죽음 직후 유흥적 행위' 에 대해 추궁하는 면모를 보인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더 사고가 뚜렸해졌다. 우리가 뫼르소의 행위를 비판할 수는 있겠으나 행위에 대해 죄를 물을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에 감정을 느끼지 못한 것은-물론 일부 뇌 기능의 문제일 때도 있지만-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정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강요된 감정은 좋을 것이 없다고 본다. (장례식장 등에서 예의를 차리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슬픔의 감정을 느끼지만 밖으로 표출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을 지지하는데, 죽음은 누구나 반드시 겪을 일이며 그 순간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이후의 나의 감정이 그 결과에 대해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굳이 그럴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느낀다.

장자는 죽음에 대해 초연한 태도를 보이라고 했다. 슬퍼할 이유도 기뻐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나의 가치관과는 이것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

정리해보자면, 죽음에 대해 특정한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다. 자연사인지 사고사인지 아니면 또 어떤 이유에 의한 죽음인지에 따라 감정이 달라질 수도 있고, 어느 유형의 죽음에 대해서만 특정 감정을 표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때 강요된 감정이라면 그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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