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과하는 몸 5

by 김문수

비가 온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창문을 치는 소리에 나는 눈을 뜬다. 오늘 너는 퇴원한다.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반갑지 않은 일은 또 아니다. 바닥이 습기로 가득해 발을 대자 마자 끈적끈적해져 버렸다.
병원은 한산했다. 너는 조금 수척해진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그만 좀 다쳐.
나도 다치기 싫어.
그럼 안 다치면 되지.
그게 내 마음대로 될 리가 없잖아.
나는 포기하고 미리 예약해 둔 식당으로 갔다. 고급진 곳을 기대했던 듯 넌 묘하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기도 했다. 먹을 수 있음에 감사나 하시지, 이 정도도 못 먹어 배 곪는 아이들이 많다고. 너는 처음과는 달리 막상 음식이 나오자 잘만 먹어 댔다. 나는 너에게 요즘 시간이라는 것이 답답하여 견디기 힘들다고 나의 상태를 전했다. 너는 대수롭지 않은 듯 스테인리스 물 잔을 들고 냉수를 원샷한 후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듣다 보니 시곗바늘이 정차한 듯한 기분마저 들을 정도로 따분했다. 무슨 종류의 이야기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
비가 며칠 동안 내렸다. 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만 내린 것이 아니라 정말 며칠이고 쉴 새 없이 물방울을 흩뿌려댔다. 산의 흙들이 온통 진창이 되어 출입 금지 팻말이 붙었다(어쩌다 한 번씩 오르는 이들을 보긴 했다). 나무는 쓰러질까? 대략 이십오 미터의 높이에 네다섯 아름 정도의 둘레를 지는 그 우람한 탑은 어떻게 될까. 궁금증이 차고 넘쳐흘러 당장 산으로 달려가보고 싶었다. 너의 사진이 짓이겨져 있는지도 궁금했다.
생수병뚜껑이 이상하리만치 잘 따지지 않는 날이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수건으로 감싸고, 이로 깨물어도 보았으나 도무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꼭 마치 집 화장실에 끊임없이 증식하는 포슬하고 칙칙한 빛깔의 곰팡이 무더기를 닮은 상태였다. 아니, 그 모습 말고 속의 성질이. 치우고 닦고 청소 업체를 불러도 해결되지 않던 곰팡이나 별에 별 짓을 다 해도 열리지 않는 이 생수나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갈증이 났다. 식도가 말라붙어 가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급하게 뚜껑을 돌릴수록 점점 반대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
서울, 한강. 한강은 단연 서울의 대표 중 하나이다. 그리고 여러 개의 다리와 여러 대의 자동차, 여러 명의 사람들도 있다. 매연과 이산화 탄소와 철제 건축물들이 혼합되어 내는 특이한 냄새는 과연 서울 그 자체라 할 만했다. 차가운 도시에는 그저 차가운 사람들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일말의 온정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라고 나는 늘 느꼈다. 그래서인지 집이든 식당이든 밥을 먹을 때마다 그것의 온도가 아무리 높을지라도 혀에서만큼은 웬만한 아이스크림 정도로 찬 감촉이 들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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