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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별 Dec 03. 2021

재회를 고민하는 당신에게

12월 3일의 악필 편지


이따금 저는 제가 감당조차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어려움을 마주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어려움을 견뎌내고 떠나보내곤 했지요. 그럴 때마다 저를 사로잡은 감정은 뿌듯함이나 기쁨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름아닌 두려움이었지요. 지금은 이겨냈지만, 이런 일이 또 내게 닥쳐온다면요? 그 때도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요? 지금보다 더 상처받고 무너져버리지 않을까요? 때로는 그런 형체 없는 두려움이 형체 있는 어려움보다 오래 마음에 남고는 했습니다.


다시 사랑하는 것이 두렵다는 당신의 고백에 제 시선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아마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 너무도 치열하게 노력했기에 그렇겠지요. 그 노력이 다시 이별로 끝맺어지는 허무감을 또다시 견딜 자신이 없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럼에도 당신은 너무도 행복한 연애였다며 떠나간 사람과의 재회를 생각합니다. 당신 스스로가 그저 그 연애를 돌이켜 미화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그 순간을 좋았던 것으로만 기억하는 게 아닐까라고까지 고민하면서요. 


사랑은 존재와 존재의 만남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은 사랑하는 일이 새 구두를 신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처음에는 서로가 어색하지요. 발과 구두가 서로 상처를 입히기도 해요. 불편한 발걸음에 구두 앞코는 쉽게 까질 테고, 발은 뻣뻣한 밑창에 문대느라 쉽게 물집이 잡히겠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집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울리지요. 구두의 밑창은 헐어 부드러워질테고, 물집이 잡히던 발가락에는 굳은살이 박혀 더 아프지 않게 될 거예요. 


중요한 건,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켰지만 그럼에도 발은 발이고 구두는 구두라는 점이에요. 거기엔 존재에 대한 긍정과 노력이 있지요. 아무리 좋은 구두더라도 발이 아닌 손과는 어울릴 수 없어요. 자신의 크기에 맞는 발을 만나고, 그 발과 어우러지기 위해 단단한 가죽을 조금씩 허물어내는 노력을 들여야 해요. 그러면서도 존재 그 자체는 포기하지 않아요. 내가 발이 아닌 다른 것이 되려고 하지도 않고, 상대를 구두가 아닌 다른 것으로 바꾸려 하지도 않지요. 


두려움은 잠깐 내려두고 생각해볼까요? 당신의 부르튼 상처와 물집은 여전히 아프겠지만, 잠시 그 고통을 내려놓고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어요. 구두가 발을 안아주듯 당신이 정말 그 사람의 존재를 사랑했는지, 또 당신의 존재도 그렇게 사랑받았는지를요. 당신이 그 사람의 친절함이나 눈웃음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또 그 사람이 떠나가는 것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그 존재를 오롯이 사랑했기에 다시 재회하고 싶은지, 당신이 고민해보시기를 바라요. 


쉬운 고민은 아니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오롯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경험은 드물게 우리를 찾아오는 축복같은 일이지요. 그런 경험은 우리를 더 성숙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합니다. 당신이 그 사람을 정말 오롯이 사랑한다고 해서 다시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확언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이 두려움에 눈이 멀지 않길 바라요. 두려움으로 인해 쫓기듯 사랑하지는 않기를 바라요. 


두려움은 마주 보아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미 그 두려움을 인정하고 마주보고 있지요. 스스로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아닌가 치열하게 고민까지 하면서요. 그래서, 저는 당신이 이미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믿어요. 그렇다면 당신이 어떤 선택을 내리더라도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있겠지요. 그 너머에, 저는 조금 더 성숙하게 사랑할 수 있는 당신이 서 있기를 그립니다.  




웹사이트 링크를 통해 편지를 보내 주세요. 답장으로 악필 편지를 매주 목요일 저녁 6시에 보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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