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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별 Dec 09. 2021

이룬 것이 없다고 느끼는 당신에게

12월 9일의 악필 편지


저도 이따금 그런 느낌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세상 모두가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는데 저 혼자만 멈춰 있는 느낌이지요. 중학생때부터 글을 써 왔지만 저는 아직 제대로 된 책을 낸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함께 글을 쓰던 친구가 책을 낸다는 소식이 이따금 들려오면,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하지 못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삶을 써내려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는 열등감이었습니다.


당신의 문장에서 저는 그런 열등감의 편린을 엿본 것 같습니다. 남들은 금방 붙는 시험에서 연이어 치른 낙방, 흔한 자격증조차 없는 초라한 이력서, 이 나이에 ‘하꼬’ 중소기업이라도 들어가야 하나 싶다는 자조 섞인 체념들로부터, 저는 당신이 누군가와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을 느낍니다. 제 책장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지요. 저는 작가의 친필 싸인이 담긴 책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제가 직접 펼쳐 읽어 본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열등감에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초연해진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그 감정들이 이제는 저를 사로잡지는 못합니다. 저는 매번 최선을 다해 실패했지요. 제가 눈 앞의 실패밖에 바라보지 못할 때, 저의 시선을 돌려 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저의 행운이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최선을 다하는 연습이 삶의 지금도 저를 지탱해주고 있다는 것을 저는 이들 덕분에 볼 수 있었습니다. 


현실을 일깨워주는 충고는 냉혹한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가진 힘을 자각하게 하는 것도 뼈를 때리는 비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4년간 거듭된 실패 속에서도 매일 자전거를 타고 새벽 공기를 가르며 독서실을 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당신이 끈기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겠지요. 이제는 술과 담배로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당신이 지쳤다는 뜻이겠지만, 그렇게까지 소진되도록 열정을 불태운 경험이 당신에게는 있는 것이겠지요. 그건 저 또한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반성할 줄 아는 것 또한 뛰어난 장점입니다. 궁지에 몰리고 지친 상황에서도 자신의 반성할 점을 찾으려는 당신의 태도는 존경받을 만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반성이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세우기 위한 것이 되지는 않기를 바라요. 최선을 다 했음에도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다면 그건 당신의 탓이 아니라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게 사람이 할 일을 다 했다면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의 뜻이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한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일 겁니다. 하나는 경험으로부터 배워 나아지는 일입니다. 그건 당신이 이미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른 하나는, 하늘이 우리에게 어떤 뜻을 내리더라도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랑은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해가 뜨든 비가 내리든 삶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살아가게 합니다. 이따금은 울다가도 웃고, 이따금은 추위를 견뎌 꽃을 피우며, 또 이따금은 다른 이를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니, 스스로 이룬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길 바라요. 당신은 이미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당신의 삶을 이뤄냈고, 이뤄가고 있으니까요.

  



웹사이트 링크를 통해 편지를 보내 주세요. 답장으로 악필 편지를 매주 목요일 저녁 6시에 보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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