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가고 싶어? 그럼 어느 학교 가고 싶어? 정시로 아님 수시로? 전공은 뭐 하고 싶은데? 그래? 꼭 가고 싶어? 그럼 선생님이 다시 물어볼게. 넌 대학을 가고 싶은거야, 아니면 대학을 못 가는 게 무서운 거야?”
제가 학생 시절 학원에서 만난 은사님이 학생들에게 자주 던지던 질문입니다. 마지막에서 자신있게 대답하는 학생은, 제가 나이를 먹고 학원에서 일을 하는 동안에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들 멈칫 하고 음, 하면서 망설이죠. 사실 누구한테 물어도 비슷한 질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또한 마찬가지지요. 뭐 하고 싶어? 꿈이 뭐야? 그래? 그럼 다시 물어보자, 그 꿈을 이루고 싶은 거야 아니면 못 이루는 게 무서운 거야? 음, 글쎄요.
자본주의 사회잖아요.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연료로 굴러갑니다. 학부 시절 들었던 전공 수업에서도 광고는 소비자를 협박하고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요. 이 상품을 사지 않으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뒤쳐질 것 처럼 느끼게 해야 상품이 팔린답니다. 상품 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통용되는지도 모릅니다. 공부 안 하면 폐물이 될 것 같은 두려움에 공부를 하고, 일을 못 하면 굶어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일하고, 또 그 두려움을 만들고, 사고, 팔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두려워하며 살아갑니다. 어쩌면 마르크스가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된다고 말한 것이 이런 맥락이 아닌가 합니다. 먹고 사는 일이 두려워 거기에 매몰되고 만다는 것, 살기 위해 노동하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하고 소비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지요.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우리는 자주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고들 말하잖아요.
마르크스가 대단한 건, 이 통찰에 그치지 않고 또다른 사회를 상상해낸 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먹고 사는 일로 사람이 행복하지 말란 법 없나? 아니,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사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상상이 이어지면서 자본론이 되었겠지요. 사회주의가 되었을테고, 러시아 혁명이 되었을 테고, 소련이 되었다 세계 절반을 쫄딱 말아먹을 뻔한 적도 있었을테고요. 너무 멀리 간 것 같으니 가까운 얘기를 하자면 전태일 열사가 되었을테고, 전태일 열사도 반세기나 지난 얘기니(세상에!) 조금 더 가까이 가자면 주 5일제와 퇴직금과 주휴수당이 되었을 거에요. 그런데도 세상살이는 팍팍합니다. 여전히 세상은 사람보다는 돈으로 굴러가고 있으니까요.
저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지금 쓰는 이 글이 마치 자본론을 읽고 끼적이는 독후감처럼 보이지만, 고백컨데 저는 자본론은 백 미터 근처에 가본 적도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걸 마르크스는 보여주었습니다. 그게 제가 마르크스라는 몽상가를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상상하라! 자본주의의 굴레에 매여 사는 우리에게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립니다. 배부른 소리지만, 그래도 우리는 상상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고 꿈꾸어왔다고 말하는 것들이 사실 두려움을 잘 포장한 것 뿐이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도 우리는 그 두려움에 쫓기며 살아가야 하겠지만, 내가 욕망하는 것을 비로소 탐색할 수 있겠지요. 그럴 수 있다면, 비로소 우리는 더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때 비로소 문학은 일하기 시작합니다. 말을 탄 기사가 용을 물리쳐 왕국을 구하고, 신데렐라가 마침내 잃어버린 유리 구두를 찾았다고 이야기하며 우리는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 욕망이 실현되는 방법을 상상할 수 있지요. 그리고 그 상상은 우리가 더 좋은 사회를 꿈꾸게 합니다.
어슐러 르 귄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며, 이 글을 닫습니다.
"아시죠? 책은 그냥 상품이 아닙니다. 이윤 추구와 예술의 목적은 종종 갈등을 빚게 돼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안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힘은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요. 하지만 절대왕정 시절 왕의 권력도 그랬습니다. 사람이 만든 그 어떤 권력도 사람이 저항하고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 글을 쓰고 출판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우리들은 그 결과의 공정한 부분을 바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받게 될 대가의 이름은 이윤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유입니다."(http://gwenzhir.keithskim.com/3120607 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