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 생각을 밝혀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글을 씁니다. 먼저 저 스스로부터가 항우울제를 오래 복용하고 있습니다. 장기 상담을 받아 본 적도 있고, 상담 관련 전공으로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지요. 지금은 상담 관련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저를 전문가라 하긴 어렵겠지만, 우울증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고는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의 편지를 자주 받곤 합니다. 다행히 제 글줄이 그 분들께 위로가 되기도 하는 모양이고, 제가 그런 재주나마 부릴 수 있다는 데에 저는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계정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도 우울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게 되리라는 건 저도 예상했던 바입니다. 여기서 여러분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이 상담사로 진로를 준비하는 제게 큰 경험이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웬만하면 직접 다루기를 꺼리는 것이 있습니다. 자살이나, 그에 준하는 심각한 정신병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든 위로와 도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굴뚝 같지요. 저도 그런 위기를 겪은 적이 있고, 그런 일로 사람들을 떠나보낸 적도 있어서 심한 우울이 자신과 주변인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잘 압니다.
그러나 문제는 제 섵부른 위로가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위로가 당장은 답장을 받은 분을 자살 충동에서 건져드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제법 오래 제 위로로 어려움을 견뎌내실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그게 그 분의 마음 뿌리에 있는 아픔을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속이 곪아 썩어들고 있는 중환자가 진통제로만 하루하루를 넘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더 우려가 되는 것은 제가 자살을 직접 다루는 편지를 만들면, 그런 고통을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것으로 소비하는 콘텐츠로 만들 우려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건 윤리적이지 않습니다. 자살 위기는 실존적인 문제입니다. 제가 해야 하는 일은 위기에 놓인 분들의 상처를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권하는 것입니다.
아픈 마음이 담긴 한 통의 편지에 답장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답장 대신 이 글을 씁니다. 겨울은 우울한 계절입니다. 실제로 계절성 우울증이 빈발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저도 주치의와 상담하며 최근 항우울제의 복용량을 조금 늘렸습니다. 아마 이번 주 정도까지는 이 복용량을 유지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입춘이 지났습니다. 바람이 아직 차지만, 추위는 땅 위의 것들이 올 한 해를 튼튼하게 보낼 수 있을 만큼 여물게 했겠지요. 햇살이 비치는 곳이라면 곧 생명이 움틀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햇살을 찾아 가세요. 저는 여러분의 햇살이 아닙니다. 저 또한 여러분과 함께 피어날 하나의 생명이지요. 올 봄에도 우리가 마주보며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저는 이 글을 접습니다.
덧붙입니다. 글을 준비하며 한 인터넷 방송인이 우울증으로 스스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고 잼미님(조장미)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