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고양이의 날을 맞아
대학원생 시절, 아버지와 한바탕 싸우고 집을 뛰쳐나온 적이 있었다. 스물 아홉 살의 가출인지 독립인지 모를 홀로서기로 한 해를 꼬박 채우고 나서야 나는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몸도 성하니 아무튼 내 몸 하나는 건사할 수 있으리라는 치기로 뛰쳐나온 집이었다. 그러나 나 스스로를 챙기는 일은 뜻밖에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다.
잊을 만하면 바퀴벌레가 튀어나오는 자취방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편의점 앞에는 항상 늙은 길고양이가 골판지 상자를 깔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알바로 지친 몸으로 고양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안녕, 인사를 건네면 고양이는 눈을 반쯤 뜨고 야옹, 대답을 했다. 오늘 비 많이 왔는데 너는 비 안 맞았어? 야옹. 그랬구나. 저녁은 먹었어? 야옹. 여기서 자면 안 추워? 야옹...
떄로는 그게 그 날 내가 나눈 대화의 전부일 때도 있었다. 말이 오가는 것을 다 대화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제때 나온 적이 없는 월급 때문에 월례행사가 되어 버린 학원 원장과의 실랑이는 대화가 아니었다. 촉박한 논문 마감 때문에 종종 우는 소리로 끝맺곤 했던 지도교수님과의 통화도 대화가 아니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상대가 그저 담담히 들어주리라는, 그런 확신을 느낄 수 있는 대화는 드물었다.
이따금 상담의 자리에서 나는 말문이 막히곤 한다. 최선을 다해 내담자의 말을 듣고 있지만 내가 그런 노력을 하고 있노라고, 나는 언제나 이 자리에서 당신을 응원하고 있노라고 어떻게 내담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느끼곤 한다. 어떤 말로 나의 체온을 전달할 수 있을까. 그럴 때는 늙은 길고양이가 떠오른다. 그 어려운 것을 야옹, 점잖은 한 마디로 온전히 전할 수 있었던 그 고양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