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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별 Aug 11. 2022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오만과 편견 / 널 좀 이뻐해 봐, 임마. (上) / 음악 추천 받아요!


오만과 편견


지난 메일을 보낸 이후, 고등학교 친구와 전화를 하다 요즘 글 쓰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여서 평소에도 전화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하지요. 그런데 이 친구가 그 전교 1등과 동네 친구더라구요. 덕분에 저는 미처 알지 못했던 전교 1등의 방황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재혼 가정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고등학교 내내 공부 스트레스에 폭식을 해서 살이 쪘었다, 까칠한 성격 덕분에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해 항상 외로워했다, 수능을 잘 보고도 아들이 의대를 가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압박에 과목을 바꿔 재수를 해야 했다…


통화를 끝내고 저는 맥주 한 캔을 들고 책상에 앉았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 속에 있던 건 오만한 전교 1등이 아니었습니다. 상처받은 19살짜리 꼬마였지요. 그 오만함 또한 그 친구에게는 최선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겁에 질린 고슴도치는 가시를 세우고 몸을 웅크리지요. 그 친구와 저는 다른 가시를 가지고 있었을 뿐, 어쩌면 저와 비슷한 학창시절을 보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교 1등이니 힘든 것도 없을테고 당연히 안하무인이리라는 건 제 편견이었겠지요. 물론 함부로 내뱉은 말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집은 것은 이 친구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인해 이 친구도 충분히 괴로워했을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니까요. 그건 삶을 흔드는 질병이고, 고통스러운 벌입니다.


소식을 들려 준 친구 말로는 그 전교 1등은 이제 몰라보게 살을 뺐다고 합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한 번도 연애를 하는 것을 못 봤는데 최근엔 여자친구도 생긴 것 같다고 하더군요. 다행히도 저는 그 소식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맥주를 홀짝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굳이 미워할 필요는 없지요. 한 사람을 덜 미워할 수 있게 되어서, 참 다행입니다.



널 좀 이뻐해 봐, 임마. (上)


내 마음이 병들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지한 건 재수를 준비하면서였다. 단순히 우울해서는 아니었다. 이미 내 삶은 충분히 우울에 찌들어 있었고, 그래서 이런 우울이 내가 견딜 수 있는 것인지조차 나는 판단할 수 없었다. 내가 병원을 처음 찾은 것은 그 때 겪었던 이상한 증상 때문이었다. 이따금 누군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처럼 찌릿한 통증이 나타났다. 그리고 한동안 눈 앞이 새까매졌다, 숨을 조금 골라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조금씩 증상은 심해졌지만 그게 일상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굳이 병원을 찾은 것은 기숙 학원에 들어갔다가 증상이 심해지면 골치가 아플 것 같아서였다. 우리 형과 사촌형도 기숙 학원에서 재수를 하고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우리 형의 성공은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수능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이 전혀 없어서 재수를 했는데, 재수 끝에 어디 가서도 무시당하지 않을만한 명문대에 입학했으니까. 그 후로 아버지에겐 재수하려면 무조건 기숙 학원에 보내야 한다는 게 성공 공식처럼 박혀 버렸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기숙 학원에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이미 나는 정신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황이었다. 낯선 곳에 뚝 떨어져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지옥행을 선고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게 뭐라고 죽을 것처럼 두렵고 무서웠다. 돌이켜보면, 그 때 나는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 같다. 학교 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한 내가 하루종일 규칙으로 얽매이는 생활을 잘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완고했다. 기숙 학원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면 당장 해병대로 입대하라는 것이었다.


내 나름대로의 재수 계획이 없던 건 아니었다. 아들이 글재주가 있다는 걸 눈여겨 보셨는지, 내가 고등학생 때 어머니는 제법 소문난 논술 학원을 수소문해서 보내셨다. 거긴 꽤나 독특한 학원이었다. 대한민국 사교육 시장에 전인 교육을 하겠다는 선생님들이 모인 곳이었으니. 논술 수업은 걸핏하면 원장 선생님의 인생 철학 강의로 빠져들곤 했지만, 그 철학에는 나름의 따스함이 있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교육자는 학생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원장 선생님의 그런 뻔한 이야기에 감화된 선생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업을 하고 있었다.


수능을 마치고 입시 상담을 하면서, 기숙 학원은 죽어도 가기 싫다는 내 하소연을 어린애가 징징거리는 걸로 치부하지 않은 것도 그 곳의 선생님들 뿐이었다. 원한다면 이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교실 하나를 자습실로 내어 줄테니 하루종일 그 교실을 써도 좋다는 게 선생님들의 제안이었다. 아버지를 설득 못 할 것 같으면 가출이라도 하라고, 학원에서 재워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스운 이야기다. 학생에게  가출을 권하는 학원 선생님이라니. 그러나 나는 그 말씀을 들으며 나는 눈물을 한 바가지쯤 흘렸던 것 같다.


그러나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갈 수 있는 건 기숙 학원 아니면 군대뿐이었다. 더 무서운 건 군대였고 덜 무서운 건 기숙 학원이었다. 나는 더 무서운 것을 피해 기숙 학원으로 도망치듯 입소했다. 그때 난 아주 찌질한 짝사랑을 3년째 이어가고 있었는데, 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고백을 하고 칼같이 까였다.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던 것 같다. 여기서 더 나빠질 게 있겠느냐는.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고백이었다기보단 정신적인 자해였으리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보살이 아닌 이상 그런 심정으로 하는 고백이 성공할 리가 없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마음에 부러 큼지막한 상처를 낸 채로 나는 짐을 쌌다. 그 짐에는 우울증이 뭔지도 모르고 찾아갔던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도 있었다. 학원에서의 생활은 생각만큼 지옥같지는 않았다. 두어 달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고3 시절 내내 정체되었던 성적은 훅 뛰어올랐고, 학원에서의 생활은 단조롭고 지루할 지언정 그리 나쁘진 않았다. 몇몇 친구를 새로 사귈 수도 있었다. 대체로 나와 공통점이 있는, 그니까 우울과 무기력에 찌든 친구들이었다. 지옥은 학원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나는 매일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쳤다. 운이 따랐는지 나는 그 학원에서도 꽤 상위권의 등수를 기록할 수 있었다. 제법 어렵게 나왔던 영어는 만점을 받았던 것 같다. 수능 전 마지막 모의고사때 이런 성적을 받았다면 그 자리에서 만세 삼창을 했을 성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상하리만치 기쁘지가 않았다. 점심 시간, 줄을 서서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만난 담임 선생님이 호들갑을 떨며 내게 아는 척을 했다. 야, 우리 반에서 영어 만점 너밖에 없어! 내가 너 열심히 공부하는 거 보고 잘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감사하다며 활짝 웃는 대신, 나는 시선을 내리깔고 조용히 대답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용인데요.”


선생님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나를 훑어보았다.무례한 대답이었다. 공부하러 온 학생이 선생에게 성적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되묻는다니. 그러나 나는 그런 예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 곳에서의 생활, 새로 사귄 몇 안 되는 친구들, 그리고 여기 온 목적이었던 성적, 어느 하나에서도 나는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성적표에 찍힌 숫자가 우울에 목이 졸리고 있던 나를 구해주지는 못했다. 열아홉 살, 나는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걸 깨달았을 때 나는 어떻게든 기숙 학원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음악 추천 받아요!


글을 쓸 때에 저는 항상 음악을 듣습니다.  가장 자주 듣는 노래는 박효신의 야생화, 에피톤 프로젝트의 봄날, 벚꽃, 그리고 너 이렇게 두 곡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들이기도 해요. 그러다 좀 집중이 되는 것 같으면 이어폰을 집어넣고 글쓰기에 몰두하지만,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을 만드는 데에는 이만한 곡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분을 좀 바꿔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들어 본 분들은 알겠지만 차분하고 잔잔한 곡들이거든요. 요새 우울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고 있는데 자주 듣는 노래라도 바꾸면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마냥 묻어두고 꺼낼 엄두도 내지 않았던 기억들을 매주 두 번씩은 끄집어내서 지긋이 바라보고 있으니, 이게 예상보다 진이 꽤 빠지는 일이네요!


그리고 하나 더! 최근엔 런닝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고작 두 번 뛰었지만 아마 어렵지 않게 재미를 붙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새로운 취미를 시도하는 김에, 새로운 취향도 좀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오네요. 그래서 뛰는 동안 들을 만한 음악을 찾고 있어요. 여러분이 추천하고 싶은 음악이 있을까요? 비트는 적당히 빠르고, 너무 시끄럽진 않고, 적당히 발랄한 분위기면 좋겠어요. 취향을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EDM은 정이 참 안 가네요!


그러니 우리, 플랫폼도 바꾼 김에 댓글이나 한번 써 볼까요? 좋아하는 가수나 노래를 댓글에 달아 주세요. 좋아하는 이유도 달아주시면 더 좋구요! 들어보고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다음 편지에는 감상을 써 볼게요.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는 뉴스레터를 통해 연재했던 에세이 원고를 다듬은 글입니다. 퇴고본이기 때문에 뉴스레터 연재 당시와는 다소 내용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매주 수/일요일 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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