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의 악필 편지
어린 시절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마주친 영화가 있었습니다. 내용이 전부 기억나는 것도 아니고, 제목조차도 모르는 그 영화는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모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를 치유하기 위해 대단한 일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약국에서 반창고 한 통을 사들고, 서로 상처를 받았던 장소에서 모였지요. 그리고 그 곳 어딘가에 반창고를 붙이고 사라졌을 뿐입니다.
그렇게 기억의 저편에 잊혀져가던 이 영화가 돌연 생각났던 것은 몇 년 전이었습니다. 매일 영동대교를 올라 한강을 내려다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게 평범한 산책이 아니라, 난간 너머로 몸을 던지고픈 자살 충동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저는 한강으로 발을 끊었지요. 시간이 충분히 지났을 무렵, 저는 돌연 그 영동대교에 문득 다시 올라보고 싶은 마음을 느꼈습니다. 아마 그 상처를 충분히 나았는지 궁금해졌던 것 같습니다.
무서웠지요. 그러나 평생 이 상처가 나았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 때 떠오른 것이 저 영화였습니다. 저는 영화 주인공들처럼 반창고 한 통을 사들고 영동대교에 올랐습니다. 강바람이 아프도록 차가웠고, 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영동대교의 난간 위에 반창고를 붙이고는 도망치듯 뒤돌아 나왔습니다. 가장 큰 반창고를 두 개나 붙였었지요.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요. 그러나 여전히 상처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다시 영동대교를 오른 건 일 년 정도가 지난 후였습니다. 접착제가 바싹 말라붙어 퍼석해졌지만, 반창고는 그 자리에 붙어 있었습니다. 저는 손톱으로 그 접착제 자국을 긁어 반창고를 떼며 이제는 제가 괜찮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얇은 반창고 두 장이 내 상처를 지켜주었기에, 내가 나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요.
물론 그 반창고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마법의 반창고는 아니었지요. 당장 천 원짜리 한 장을 들고 약국으로 달려가면 누구나 살 수 있는 싸구려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제 상처를 인정하고 치유하기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반창고는 그런 마음이 담긴 상징에 불과합니다. 반창고를 붙이는 건 내가 나의 상처를 돌보겠다는 선언이었지요.
그런 선언이 저를 살게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상처가 덧나지 않게 아물게 했지요. 우리는 어떤 상처를 입더라도 죽지 않는 한은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 명료한 진실에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치유하고 돌볼 수 있는 힘이자,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무언가와 싸워나갈 힘입니다.
그러니 상처를 외면하지 마세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상처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돌보는 것입니다. 상처를 닦고 반창고를 붙이기 위해 우리는 상처를 마주보아야 합니다. 그게 어렵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우리는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는 일입니다. 그렇게 상처를 안고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 날 알아챌 수 있을 겁니다. 반창고가 떨어진 자리에 돋아난, 붉은 새 살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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