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말하곤 합니다. 보통은 이런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지요. 누군가의 단점이 쉽게 고쳐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진 말라고요.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단점이 문제가 된다면, 빨리 손절해버리라는 뉘앙스가 담긴 말이기도 합니다. 그걸 바꾸기는 참 힘든 일이고, 바꿀 수 있으리라고 보장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쓴다’라고 말하는 것부터가, 사람을 물건처럼 대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공적인 관계에서는 이런 말을 사용해도 좋을 겁니다. 그러나 사적인 관계에서는요? 누구나 단점은 가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단점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장점이 있을지도 모르고, 일견 단점으로 보이는 것도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거든요.
예컨데 거칠게 다른 사람을 대하고, 쉽게 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거친 태도는 뜻밖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폭력에 시달리며 자라왔기 때문에 강해보여야만 상대가 자신을 얕보고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 사람이 갑자기 욕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불안하다고 느낄 겁니다. 다른 문제행동을 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이 문제행동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이 사람의 삶을 건드려야겠지요. 어린 시절부터 쌓아 온 폭력의 상처를 치유하고, 더 이상 욕지거리를 하지 않아도 당신을 건드리는 사람은 없다고 끈질기게 말해줘야 할 겁니다. 이 사람이 진심으로 그 말을 믿을 때까지요. 충분히 설득이 되었다면, 이 사람도 더 이상 욕을 하지 않을 겁니다.
어려운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 전문적인 상담사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상담사라면 기법을 활용해서 좀 더 효율적으로 해낼 수는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당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건 복잡한 상담 기법 같은 게 아니라, 그저 상대를 존중하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존중이란 상대를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는 일이거든요. 존중은 장점과 단점으로 누군가를 나누고 파헤치는 일이 아닙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지요. 우리는 관계에서 존중을 충분히 경험할 때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상대의 단점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 단점이 비로소 고쳐질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다시 당신의 물음으로 돌아갈까요? 이런 애인도 제가 고칠 수 있나요? 이 문제만 고치면 완벽한 사람인데… 저는 이런 답변으로 이번 편지를 접겠습니다.
“고칠 수 있지요. 고치고 싶은 그 문제도 포옹하실 수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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