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석이 비워진 뒤에 ②

비워진 자리의 호흡

by 해온


관중석이 비워지고 나면
나는 늘 조금 더 남아 있다.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인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내려가고,
어깨를 감싸 안고,
결과를 묻고,
다음을 이야기한다.
나는 그 사이에
쉽게 끼어들지 못한다.
경기는 끝났는데
내 심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이의 발이 엇갈리던 순간,
넘어질 듯 흔들리던 몸,
숨이 차서 잠깐 고개를 숙이던 표정이
내 안에서 늦게 재생된다.
휘슬이 울렸을 때보다
조용해진 지금이
오히려 더 시끄럽다.
나는
가방 손잡이를 쥔 채
앉아 있다.
아이의 하루는
아이의 것이어야 한다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그 하루가 다칠까 봐
먼저 겁이 나는 건
늘 나였다.
“괜찮았어.”
“잘했어.”
“다음엔 더 잘할 거야.”
수없이 준비해 둔 말들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간다.
엄마의 말은
아이의 하루보다 오래 남는다.
나는 그걸 안다.
그래서
조금 늦는다.
비워진 관중석의 공기는
의외로 정직하다.
박수도 없고,
평가도 없고,
위로도 없다.
그저
끝난 하루의 무게만
남아 있다.
그 안에서
나는 비로소
내 감정을 마주한다.
무서웠던 순간,
억지로 삼킨 한숨,
아이 대신 울고 싶었던 마음.
나는
관중석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아이보다 더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를 믿는다는 말은
쉽게 쓰이지만
그 믿음은
늘 연습이 필요하다.
개입하지 않는 연습.
대신 말하지 않는 연습.
먼저 안아주고 싶어도
잠깐 멈추는 연습.
나는 아직도
그 연습이 서툴다.
그래서
조금 더 앉아 있는다.
아이가 관중석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볼 때
나는 손을 흔들지 않는다.
그 대신
눈을 피하지 않는다.
괜찮냐고 묻지 않고,
왜 그랬냐고도 묻지 않고,
그저
같은 눈높이로
그 하루를 받아준다.
그것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걸
이제는 안다.
관중석이 비워진 뒤에야
나는 엄마로서
조금 정직해진다.
결과가 아니라
아이를 바라보게 되고,
기대가 아니라
존재를 보게 된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버텼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아이의 곁으로 내려간다.
말 대신
같은 속도로 걷기 위해.
그리고 마음속으로만
조용히 덧붙인다.
너는
오늘도
엄마 마음속의 금메달이라고.
―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