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며칠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냈다.
말을 꺼내지 않기로 한 건
약속이라기보다는
서로가 동시에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결과에 가까웠다.
금기를 깨는 것 같은 심정으로
하루를 보냈다.
유리구두를 신고 있는 것처럼
발을 디딜 때마다
조심스러웠고,
괜히 말 한마디에
모든 균형이
무너질 것 같았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아이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며칠째
잠을 설쳤고,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얼굴로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다행이면서도
서운했다.
아무 일 없다는 얼굴이
정말 아무 일 없다는 뜻인지,
아니면
아무 일 없는 척을
하고 있는 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
말을 꺼내지 않으니
집 안의 소리들이
더 또렷해졌다.
문 닫히는 소리,
물 끓는 소리,
발걸음이 멈추는 순간들.
이전 같았으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소리들이
그날따라
자꾸 귀에 걸렸다.
그 소리들 사이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같은 하루를
지나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자의 마음은
조금씩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운동이 대수냐”,
“그게 그렇게 고민할 일이냐”는
주변의 말들은
쉽게 던져졌다.
그 말들은
대개 위로를 가장하고 있었고,
그래서 더
대답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운동은
우리에게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건
우리가 흘려보낸 시간이었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누적이었다.
아이는
그 시간 위에
서 있었다.
그 시간을
보상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아직 결과가 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설득하지도,
다짐하지도,
위로하지도 않은 채
오늘을
시간에 맡겨보기로 했다.
답을 재촉하지 않고,
결론을 앞당기지 않고,
그저
하루가
하루답게 지나가기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며칠은
아무 일도 없는 시간이 아니었다.
다만
아직 말을 꺼낼
때가 오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하루를
시간에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