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구간

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끝

by 해온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도
날은 밝았다.
침묵은 밤에만 머무르지 않았고,
아침이 와도
그대로 이어졌다.
아이는 훈련을 갔고,
어둠이 내려앉은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땀에 흠뻑 젖은 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옅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열심히 운동했구나.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 먼저 지나갔다.
말로 하지 않아도
몸은 이미
그 하루를 알고 있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우리의 시간은
평소와 다르지 않게 흘러갔다.
식탁에 앉고,
각자의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샤워 소리가
집 안을 채웠다.
그 모든 장면이
이미 여러 번 지나온 하루처럼
익숙했다.
이 집에서
우리는 수없이
이런 저녁을 보내왔다.
그래서 더
아무 일 없는 얼굴로
하루를 건너는 일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우리의 마음만은
수시로 요동쳤고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는 척
지나가는 하루가
생각보다 더 많은 힘을
필요로 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말을 하지 않는 동안
나는 계속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지금 이 침묵이
도망은 아닌지,
외면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하지만 답은
늘 같은 자리에서
멈춰 있었다.
침묵이
답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말을 꺼내
무언가를 바로잡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느껴졌고,
지금은
그대로 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감정에는
때가 있고,
말에도
순서가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완전히 멈춰 있지는 않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견디고,
다음 날을 준비하고,
다시 같은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언제나
뜨거운 마음.
그 마음을
지금 당장
쏟아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 침묵의 끝에서
비로소 배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끝은
아무 일도 없던 끝이 아니라,
말이 필요 없는 지점에
잠시 도착한
하루의 마침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