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여백을 알아버린 사람
여백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루는 여전히 바쁘고
아이들은 나를 부르고
해야 할 일은 끊기지 않는다.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 나는
예전처럼 빠르게
움직이지 못한다.
중간중간
이상하게 멈추는 순간이 생긴다.
아침 식탁 앞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회의가 끝난 직후에.
이전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감정 앞에서
괜히 발이 멈춘다.
왜 그런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나는 이미
여백을 알아버렸다는 것.
여백은
갑자기 생기는 시간이 아니다.
인식되는 순간부터
삶의 속도를 바꾼다.
보이지 않던 틈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전의 리듬으로
돌아갈 수 없어진다.
문제는
현실이 그 사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이의 일정은 그대로이고,
해야 할 일은 줄지 않으며,
엄마라는 역할은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여백을 알아버린 사람은
조금 불편해진다.
완전히 몰입하지도 못하고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한 채
그 사이에 남게 된다.
전에는
바쁜 게 답이라고 믿었다.
움직이고 있으면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고
멈추지 않으면
마음은 따라오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백을 알고 난 뒤에는
그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괜찮은 척 지나간 감정들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고
미뤄두었던 마음들이
자꾸만 발밑에 걸렸다.
나는 이제
모른 척할 수 없다.
아무 일 없는 얼굴로
하루를 넘기면서도
내가 무엇을
지나쳐 왔는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여백은
쉼이기도 하고
부담이기도 하다.
편안함보다는
각성을 먼저 데려온다.
그래서 여백은
사람을 가볍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 더 무겁게 만든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바쁘게 덮어두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하루를 견딜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백을 알아버린 사람은
이전보다 느려지지만
대신
자기 안을
조금 더 정확히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시선은
다음 여백을
피하지 않게 만든다.